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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주성금씨가 오빠에게

방송일 : 2019-12-17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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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파랑새 체신소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슴에 한으로만 남은 실향민, 탈북인들의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북녘으로 전해 드립니다.
손 내밀면 지척인데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가슴 아픈 북한으로 뜨거운 눈물과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그 들의 사연을 신청자 본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드립니다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진행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본인 이름이 무엇인지, 사시는 곳은 어딘지
 청취자 분들에게 소개 먼저 해 드릴까요?
신청자: 본인인사, 사는 곳 소개 북한 이야기...
진행자: 어떻게 방송에 편지를 신청하시게 되셨나요?
신청자: 신청사연, 편지를 받으실 분과의 사연 짧게...
진행자: 아, 일곱 살이면 아빠, 엄마 사랑밖에 모를 나이었는데 ... 주성금씨는
 사랑보다 배고픔, 두려움을 너무 어린나이에 알게 된 것 같아요.
 오빠에 대한 추억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사연이 있다면...
신청자: 오빠에 대한 잊지 못할 사연 한 가지....
진행자:  자, 그럼 북한에 계신 오빠에게 쓴 성금씨의 편지사연을 소개해
 드려볼까요?
<파랑새 체신소 >편지
보고 싶은 오빠에게
자나 깨나 그리운 오빠, 그 동안 잘 계시는지요?
그리운 우리 오빠, 오빠와 나는 불행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너무 어린 나이에 사별하고 우리 오누이는 이모네 집에 맡겨지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불행, 이라는 말도 모르던 나이에 우리 오누이는 불행과 고통을 겪으며 다른 집 아이들보다 세상을 먼저 깨우쳤고 행복보다 불행을 먼저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이 사망 한 후 우리가 이모님 집으로 보내질 때 내 나이는 7살, 오빠는 겨우 13살이었어요.
그 당시 이모네도 3살, 7살 오누이가 있었어요. 이모님 부부와 우리 둘까지 애들 넷이 다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모님이 마음씨가 고우셔서 이모 옷을 뜯어 다시 고쳐 제 교복을 만들어주시고 이모부 옷을 줄여서는 오빠 교복 만들어 입혀 학교에 보내 주셨어요.
그렇게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네 자식 잘 키워주신 덕분에 오빠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8년 만에 초기복무로 군 복무를 계속하게 되었잖아요.
보고 싶은 오빠, 오빠는 초기복무로 군 생활 하면서 오빠와 같은 처지의 고아, 지금의 올케언니를 만났고 결혼 후에는 동생이 불상하다고 함께 살자고 절 데리러 오셨죠.
그래서 그 때부터 저는 오빠가 사는 군부대 마을에서 오빠와 한 집에서 살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오빠네 집으로 간 다음해에 올케언니가 조카애를 낳았는데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올케시중을 정성껏 해 드리던 생각이 나요.
그런데 오빠, 그 게 고마워 올케언니가 고구마종자로 쓰려고 남겨두었던 고구마를 자주 구워주었는데 철없던 저는 그게 종인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맛있다고 자꾸 먹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종자고구마가 많이 없어진 걸 알고 오빠와 올케언니가 말다툼까지 하게 되었어요. 그 날 오빠는 화 김에 철없는 저를 때리고 하소연까지 하였어요.
어린 마음에 너무 크게 상처를 받은 저는 집을 나와 다리 밑에서 밤을 샜죠.
그런데 그 날 밤, 오빠가 적위대를 동원시켜 다리 밑에 있는 저를 찾아냈고 그 후에도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면서 철없는 제 생각에도 오빠네 가정이 이러다가 더 어렵게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어요.
저는 더 이상 오빠네 가정의 화목을 깨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빠에게 알리지도 않고 몰래 집을 나왔어요. 비록 철은 덜 들었지만 그 당시 소문만 듣고 국경이 가까운 혜산방향으로 무작정 떠났어요.
기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가다가 무작정 내려 밭에 있는 생감자도 파먹고 여물지도 않은 옥수수도 훔쳐 먹으며 국경까지 갔어요.
그렇게 유랑걸식을 하던 도중 역전에서 인신매매하는 사람의 도움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목적도 모르고 중국으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16살에 괜찮게 산다는 중국집에 양딸로 보내져 생전 할 줄도 모르던 중국어를 배워가며 살게 되었는데 덕분에 배고픈 걱정은 덜었지만 제 처지가 너무 외롭고 아빠, 엄마, 오빠 생각이 나면서 제 신세가 너무 불쌍해졌어요.
그렇게 2년을 살다 같은 동네에 사는 탈북한 언니에게 제 인생사를 털어 놓았는데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절 도와주겠다고 했고요.
그 언니도 딸 둘을 북한에 두고 왔는데 쌀을 얻어 오마, 하고 중국에 온 것이 인신매매로 중국 사람을 만나 살게 되었더라고요.
그 언니는 북한에서 두 딸을 데려오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중국 남편이 그 돈을 마련해 줄 수 없었어요.
그리운 오빠, 그 후 저는 지인들을 통해 한국 드라마도 보고 한국으로 안내해줄 브로커와 연락도 하면서 대한민국으로 올 날만 기다렸습니다.
오빠, 아무리 배부르고 등이 따스해도 나를 지켜줄 내 나라가 없이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이 쓰린 일인지 오빠는 다 모르실거에요.
보고 싶은 오빠, 그래서 저는 양부모에게는 더 잘하는 척, 더 잘 따르는 척 하면서 열심히 살다가 설 명절에 용돈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시장으로 나왔다가  그 기회에 택시를 타고 집을 빠져 나올 수 있었어요.
그 다음 은 브로커와 만났고 7일 만에 라오스 대사관까지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저는 두 달 동안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태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군 부 생활을 하는 오빠라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동생이 대한민국으로 와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조차 전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오빠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빠도 저랑 같이 이 자유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산다면 저는 이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오빠네 집을 떠난 다음 오빠와 올케언니는 잘 살고 계시겠죠? 아, 그리고 제가 온 다음 제 조카가 더 태어났는지도 궁금하네요.
제가 있을 때 태어난 옥이조카는 많이 컸겠죠?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저는 이쁜 옷을 보면 항상 조카 생각이 먼저 납니다.
조카가 대한민국에 고모가 있다는 걸 알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오빠,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저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한 것은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이 꼭 올 거라는 확신은 들어요.
보고 싶은 오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대한민국에서 오빠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거 한 시도 잊으면 안돼요.
오빠, 우리 만나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주셨으면 전 더 바랄게 없어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
양력설을 앞두고 충청도에서 동생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진행자: 아유~ 성금씨는 너무 어린나이에 세상풍파를 다 겪으신 것 같아요.
 부모가 다 해 줄 수 없는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시려고 애쓰신 이모님,  그리고 오빠가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겠어요.
신청자: 이모, 오빠에 대한 이야기 잠시 추억한다.
진행자: 오빠는 사실 성금씨가 대한민국에 사실 거란 생각도 못하고 계실
 거잖아요. 오빠에게, 이모에게 꼭 하고 싶은 부탁이 있다면...
신청자: 이모, 오빠에게 부탁 간단히 한다. 고마움도 전하고...
진행자: 긍정의 멘트와 함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신청자: 아니에요.
 제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오빠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낼 수 있게 해 주셔서 제가 오히려 더 감사하죠.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이제 양력설도 멀지 않았습니다.
 어렵겠지만 따뜻한 설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진행자: 저도 주성금씨의 오빠가 동생의 편지를 받으신다면 너무 기뻐 
 하시고 불쌍하게 자란 내 동생, 이제라도 마음껏 행복하라고 축복해
 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12-17 (조회 : 11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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