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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8.15 특집방송: 3회 일본은 과연 누구에 의해 패망하였는가

방송일 : 2019-08-15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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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개혁방송은 일제 36년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8.15 74주년을 맞으면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일본은 과연 누구에 의해 패망하였는가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1945년 8월 15일 낮 12시 일본 국영 라지오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일본 천황의 목소리가 잡음 속에 울려퍼졌습니다. 일본이 미국, 쏘련, 영국, 중국 연합국 지도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처리 회담인 포츠담 회담 선언요구를 수락하여 무조건 항복한다는 내용이였습니다.
당시에 일본 천황이 직접 녹음을 해서 방송되였던 원본 음성의 첫 부분을 들려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現狀)에 비추어보아 비상의 조치로써 시국을 수습하고자 하여, 이에 충량(忠良)한 그대들 신민에게 고하노라.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지소(美英支蘇; 미국·영국·중국·소련) 사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미국, 영국, 중국, 쏘련 4개 나라의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무조건 항복을 했고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수표를 합니다.
이로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이자 태평양전쟁에서 무조건 항복하면서 패망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패망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나라는 누구인가가 중요하게 제기됩니다.
왜냐하면 조선에서는 반세기를 넘어 7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김일성이 만주에서 풍찬로숙하며 일제와 싸워 이겼다고 선전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영화 “조선의 별”을 비롯해 “하루를 앞두고” 등은 모두 김일성이 일본제국주의와 싸웠고 또 조선을 해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들입니다.
조선 예술영화 중에서 1945년 조국해방을 다룬 영화들도 많은데 대부분의 영화들에서는 쏘련군대가 조선에 진주하면서 일본군과 싸우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상들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중국과 조선의 일본군을 공격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예술영화들에서는 은근히, 마치도 김일성의 항일 투쟁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8.15 해방이 된 것처럼 조작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사람들은 쏘련군의 만주지역 침공이 일본 항복을 앞당겼다는, 다시말해 쏘련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일본이 항복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력사적 자료와 증거들은 일본의 항복이 미국의 공격에 의한 것이고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원자폭탄 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2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급속도로 강화되는 미국 해군력을 당하지 못하고 괴멸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의 련합군 잠수함은 전쟁 기간 동안 1,200대의 일본 상선을 격침했고 500만 톤의 군수물자를 침몰시켰습니다. 1945년 봄까지 일본군은 태평양의 군사적 요충지 섬들을 모두 빼앗기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나라들에서도 패배했습니다.
미국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에 대한 본격적인 공습을 시작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45년 3월 10일의 도쿄 대공습입니다. 이날 미 공군은 일본 수도 도꾜와 그 주변 일대에 약 세시간에 걸쳐 2천 4백여톤 무게에 달하는 백만발의 소이탄과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 공습으로 3월 10일 하루에만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후에 사망한 사람까지 합치면 15만명에 달합니다. 미국이 도꾜 대공습을 계획한 것은 결사항전을 준비하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서였습니다.
1945년 미국은 일본의 67개 도시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하면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했지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5월 7일 나치 독일이 항복하였고 미국, 영국, 쏘련, 중국 네 개 나라 지도자들이 포츠담에서 회담을 열고 전후처리를 토론했습니다.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고 결사항전을 준비했습니다. 대규모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결사항전을 하게 되자 투르먼 미국 대통령은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합니다.
미국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폭탄 투하하자 쏘련의 쓰딸린은 전격적으로 대일참전을 명령해 만주의 일본군을 공격합니다. 쏘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한 다음날인 8월 9일 미국은 두 번째 원자폭탄을 나가사키에 투하하고 나서야 일본 군부는 생각을 바꾸어 무조건 항복을 결정합니다.
이처럼 약 4년간에 걸친 태평양전쟁 동안 실제로 일본군과 싸워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것은 미국이였습니다. 쏘련이 미국의 첫 번째 원자폭탄 공격이 있고나서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지역과 조선으로 진격했지만 당시 일본군은 껍데기뿐이였습니다.
쏘련은 1945년 8월 11일 나진 상륙작전을 감행했는데 당시 미국은 오끼나와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쏘련군의 맹렬한 진격을 보고 미국의 전쟁지휘부는 맥아더 장군에게 한반도를 신속히 점령하라는 긴급작전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8월 22일에는 쏘련군이 평양을 점령하고 곧바로 군정통치를 시작하게 되고 미군은 9월 7일 인천에 상륙해 서울로 들어옵니다. 미국이 일본을 패망하게 만들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 상황을 리용해 쏘련이 개입하면서 조선이 북과 남으로 분단되게 된 것입니다.
1945년 9월 2일 일본 도꾜만에 정박한 미군 전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은 항복문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공식적으로 패망을 확인합니다.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도꾜에서 태평양전쟁 전범들에 대한 군사재판을 열고 일본 수상 도조 히데끼를 비롯한 일본 전범들을 처벌합니다.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는데 1946년 5월에 시작된 도꾜 군사재판에서 처벌받은 피고는 모두 25명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수상이 4명이었고, 외무장관 역시 4명, 전쟁관련 장관이 5명, 해군장성이 2명, 대사가 4명이였는데 이 재판은 1948년 11월에 끝이 났습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주석은 1940년 쏘련 우수리스크로 피신하기 전까지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웠지만 일제를 패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에서는 8.15를 조국광복이라고 하는데 비해 북조선에서는 8.15를 조국해방이라고 합니다.
광복이나 해방은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는 같지만 광복은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말인데 비해 해방은 어떤 구속에서 억압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같지만 아주 중요하고도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주권을 다시 찾았다는 것이 남조선이고 북조선은 김일성이 해방시켰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틀렸습니다. 일본을 항복시킨 것은 미국이였습니다.
이상으로 8.15 특집 방송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8-14 (조회 : 4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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