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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하정순씨가 그립고 보고싶은 딸에게

방송일 : 2019-07-26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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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와아~~여름이다~~~네, 여름이 왔습니다.
요즘은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해외로 국내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며 터미널, 부두, 경치 좋은 바다가, 심지어 시골 팬션까지 사람들로 넘칩니다.
물 반, 사람 반인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며, 시원한 계곡의 레프팅, 즐거운 물놀이... 생각만으로도 시원하고 금 새 마음이 가벼워지는 피서 철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올 여름 휴가 어디로 갈까, 마음 설레며 기다리고 계신가요?
늘 어려운 일상이지만 열심히 일 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즐겁고 상쾌한 이런 휴식도 잠시 하시면서 더운 여름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하정순씨는 그립고 보고 싶은 딸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리운 따님과 하정순씨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려운 시련의 고비를 넘으며 제가 한국으로 온지도 벌서 11년이 나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제 삶은 나날이 즐겁고 큰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북에 두고 온 딸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하루에도 몇 번 씩 저 분계선 너머 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제는 제 딸도 중년이 넘어 가고 슬하에 세 자식을 거느린 엄마가 되었지만  제 마음 속에 있는 딸은 늘 어린애 같고 아직도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아기 같기만 합니다.
엄마가 되어가지고 딸이 어려울 때 도움도 줄 수 없고 아무런 보탬도 없이 그리움 속에 가슴만 뜯으며 이렇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제가 세상을 잘 못 만났는지, 우리 딸이 엄마를 잘 못 선택해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편지로나마 엄마의 사연을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 딸에게 이 편지가 꼭 전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딸에게
그리운 내 딸아!!! 혜숙아~~~
무정한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내가 너와 헤어진지도 언언 11년 세월이 흘렀구나. 그 동안 캄캄한 저 땅에서 부모도 없이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니?
그 곳에 너를 두 고온 엄마의 마음은 어느 한 시도 맘 편한 적 없었고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마음 놓고 살 수 없는 곳이라 아직 그 곳에서 살고 있을 네 생각을 하면 나는 잠을 설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란다.
너와 나는 엄마와 딸로 이 세상에 와서 남보다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내 딸아, 어린 네가 어미 뱃속에 있을 때 너는 네 아빠를 잃었지.
그렇게 네가 유복자로 세상에 왔을 때 너에겐 아빠, 라는 존재가 없었고 엄마만 있었어.
한 없이 사랑스러운 딸이었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고운 내 딸이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유복녀로 태어난 너는 어린 시절부터 이세상이 엄마가 다 인줄 알고 자랐지.
그래도 그 정권에서 하층 계급은 아니어서 계급적 천대나 멸시는 없었지만 항상 아비 없이 크는 너를 보면 이 엄마는 가슴이 늘 아팠단다.
딸아, 지금은 너도 50대를 살고 있으니 세상을 조금은 알겠지만 네가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아비 없이 자식을 키운 홀어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너와 둘이 살다가 내가 재가를 하면서 너에게 남동생이 태어났지.
물론 자식은 둘 다 내가 낳았지만 너와 네 동생은 아빠가 다른 형제였어.
아빠가 다른  두 형제라도 너희들은 서로 다정하고 화목했고 정말로 행복한 우리가정이었어.
딸아, 세 아이들은 다 잘 자랐는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 얼굴도 모르고 사니
이건 정말 정상국가는 아닌 것 같아.
딸아, 우리나라를 두 동강 내면서 우리에게 그래도 되냐고 물어 본 사람이 있었니?
저들 마음대로 나라를 둘로 갈라놓고 갈라진 나라에 사는 아픔은 우리더러 다 안고 살라고 하니 우리처럼 혈육이 서로 헤어져 소식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그리운 내 딸아, 엄마는 한국에 와서 언젠가 한 번 우연히 연락이 닿아 자그마한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 후로는 늘 몸이 아파 이래저래 세월을 보내다 나니 다시 너와 연결을 못하고 살았다.
장사를 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 무슨 책임을 맡아서 하다 보니 장사도 제대로 못하고 네가 어떻게 사는지 엄마는 늘 그게 걱정이다.
딸아, 나는 그래도 네 동생을 데리고 한국에 오는 바람에 가까운 곳에 아들이 있어 너무 적적하진 않게 산다.
그리고 네 동생도 아이들이 셋이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남매가 둘 다 아이들을 세 명씩 낳다보니 나는 손자손녀가 여섯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었구나.
물론 네 동생은 집을 따로 받아 살고 엄마도 혼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은 이렇게 나이가 많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어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도움도 주고 네 목소리라도 들어 보고 싶다. 과연 그런 기회가 올지, 그 건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보고 싶은 딸아, 너도 엄마가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겠니?
너에겐 적어도 세상의 전부 같던 엄마가 곁에 없으니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하겠니?
나 역시 네가 내 곁에 없는 내 삶은 한 번 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남과 북으로 헤어져 서로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의지가 강하니까 시련이 좀 있더라도 반드시 이겨내리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견디고 참노라면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꼭 있을 거야.
열심히 살다가 우리 다시 만나게 된다면, 정말로,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엄마는 내 딸에게 큰 상을 주려고 한다.
엄마도 너를 만나는 날까지 무사히 건강히 살아 보려고 애쓰고 있다.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는 대한민국에 와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덕분에 매일 사는 것이 즐거워졌다.
엄마는 교회에 가면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 내 딸과 북한의 우리 손자, 손녀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잘 보살펴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도 하나님의 진정한 복음이 들어 갈 수 있게 해 주셔서 우리 민족이 하루 빨리 하나 되게 해 달라고 매일 같이 기도 한다.
내 딸아 그 기도 속에는 내 딸과 내 손자, 손녀들의 안녕과 행복이 함께 있어.
그리운 내 딸아 너도 어렵고 힘들 때마다 네 소원을 하나님께 빌며 우리가족의 만남을 이루게 해 달라고 반드시 기도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내 딸 혜숙아,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겠지만 부디 힘을 내어 엄마를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어 주기를 바란다,
또, 기회가 오면 그 때 소식을 전하기로 하고 오늘 편지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숨 막히게 너를 그러안고 너의 체온을 느껴 보고 싶다.
사랑하는 내 딸아, 부디부디 건강하게 잘 있어라.
끝도 없이 너에게로 달리는 펜을 여기서 멈춘다.
~안녕히~
사랑하는 내 딸 혜숙이를 그리며 서울에서 엄마가 보낸다.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유수 같은 세월 속에 하정순씨의 그리운 따님도 중년의 아줌마가 되었고 손자, 손녀들도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요.
아무리 인생은 상봉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했어도 부모자식, 형제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 속에 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해방과 함께 전쟁, 후퇴, 그리고 배가고파 살길을 찾아 북한을 떠난 이들까지 이 땅의 이별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니 그 길고 긴 세월, 이산가족들이 흘린 피눈물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자유와 진리,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인류에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 분단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하고 도대체 이 수많은 이산가족들은 언제까지 울어야 하느냐고요.
하정순씨의 사랑하는 따님에게 딸을 그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목소리가 그 대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7-26 (조회 : 71)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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