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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6.25전쟁 진실에 관한 특집: 2회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한국전쟁문서(1)

방송일 : 2019-06-25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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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진실에 관한 특집-02】
【2019년 6월 25일】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한국전쟁 문서 - 1
올해는 북과 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지 6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에 대해 북조선 당국은 전쟁이 일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남조선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0여년이 흐르는 과정에 6.25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 전쟁이라는 력사적 진실과 증거들이 많이 공개되였습니다. 조선개혁방송은 6.25전쟁 69주년을 맞으며 6.25전쟁의 진실에 관한 기록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부터는 1994년 6월 2일 김영삼 남조선 대통령에게 전달된 6.25전쟁 관련 문서를 알아봅니다. 오늘은 6.25전쟁은 누구에 의해서 계획되고 준비됐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1994년 6월 2일 로씨야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전에서는 남조선의 김영삼 대통령과 보리스 옐찐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회담이 끝나자 옐찐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검은 문서 상자 한 개를 건네 주었는데 여기에는 6.25전쟁에 관한 극비문서 복사본이 들어있었습니다.
약 226건에 548페지에 달하는 극비문서는 1949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의 쏘련과 조선 외무성 사이에 오고간 전문과 회의록 등입니다. 이 문서들은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조선전쟁이 남조선의 북침이 아닌 북조선에 의한 무력 남침이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였습니다.
옐찐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넘겨준 외교문서에서 김일성은 1949년 3월부터 남조선 공격의도를 드러내 보입니다. 1949년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쓰딸린을 만난 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을 주장합니다.
김일성은 스딸린에게 무력에 의한 조선통일을 하려고 하는데 쏘련 지도부의 의견은 어떤가를 물어봅니다. 스딸린은 남조선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며 북조선 군대가 남조선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스딸린은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봅니다.
스딸린 : 남조선의 미군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김일성 : 2만명 정도입니다.
스딸린 : 남조선에는 군대가 얼마나 있는가?
김일성 : 약 6만명 정도 있습니다.
스딸린 : (웃으면서)강한가?
김일성 : 강하지 않습니다.
스딸린 : 북과 남의 군대 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한가?
박헌영 : 북쪽이 더 강합니다.
이 면담이 있은 직후 스딸린은 북조선의 전쟁준비 상태를 보고할 것을 평양의 스티꼬브 쏘련 대사에게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스티꼬브 대사는 1949년 4월 22일 북조선 군대의 장비나 조직 등 전쟁준비 상태가 미흡하다는 것을 모스크바에 보고합니다.
4월 28일 김일성은 군대의 무력과 기술강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스티꼬브 대사를 통해 스딸린에게 전달합니다. 이 시기부터 김일성과 박헌영은 무력으로 남조선을 침공하겠다는 계획을 쏘련에 지속적으로 전달합니다.
1949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티꼬브 대사를 만나 재차 남조선에 대한 전면 무력공격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조선이 평화적인 통일안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대남조선 공격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전면적인 대남조선 공격을 하면 남조선에서 리승만 정권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러나 스티꼬브 대사는 면담 내용을 스딸린에게 보고하면서 몇가지 리유로 북조선의 대남조선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밝힙니다.
9월 24일 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평양 주재 쏘련 대사에게 현재의 대내외적 상황에서 남조선에 대한 무력공격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남조선 내부에서 빨찌산 활동을 강화하라고 스딸린은 지시하지만 김일성은 남조선 무력공격 의지를 더욱 굳히게 됩니다.
1950년 1월 7일 스티꼬브 대사는 1950년 중으로 약 1억 2천만 루블의 무기와 탄약 등을 원조해 달라는 김일성의 요구를 모스크바에 전합니다. 남조선을 무력침공하고, 옹진반도를 공격하겠다는 등의 김일성의 계속된 요구는 스딸린에게 전해져 결국 1950년 1월 30일 전보가 옵니다.
평양의 스티꼬브 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스딸린은 김일성의 의지는 리해되지만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며 모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일성을 만나겠다면서 지원을 해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이러한 내용은 김일성에게 전달됩니다.
1950년 4월 초에 김일성과 박헌영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딸린을 만나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쓰딸린은 국제환경이 유리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김일성의 통일과업, 즉 남조선 무력침공을 개시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러면서 최종결정은 중국과 북조선이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만일 중국이 반대하면 새로운 협의가 될 때까지 연기하라고 지시합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조선 침공에 대한 스딸린의 허락을 받고 1950년 4월 25일 평양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하게 됩니다.
5월 13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베이징에 도착해 모택동과 만나 소련정부의 동의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본격적으로 전쟁계획을 토론합니다. 이날 김일성은 3단계 계획을 준비했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모택동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모택동은 미군이 참전하면 북조선을 돕겠다고 말합니다.
1950년 5월 29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당시 평양주재 소련대사를 만나 “소련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가 이미 대부분 북조선에 도착했다”며 “이제 6월까지 완전한 전투준비를 갖추게 됐다”고 통보합니다. 이 시점에서 조선인민군 참모장과 쏘련의 와씰리예프 장군이 남조선 침공계획을 완성했습니다.
6월 12일부터 북죽조선 군대는 38선 이북 10∼15Km지역에 배치되기 시작하고 각 군부대에 구체적인 작전명령이 하달됩니다. 6월 16일 스티꼬브 대사는 북조선 총참모부가 작성한 전면남침 계획을 작성했으며 전투준비 태세에 들어갔다고 보고합니다.
6월 22일 평양의 스티꼬브 소련 대사는 김일성과 만나서 전쟁과 관련해 나눈 대화에 대해 쓰딸린에게 보고합니다. 김일성은 스티꼬브 대사에게 6월 25일 일요일 전 전선에서 남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하겠다는 전쟁계획을 구체적으로 보고합니다.
6월 25일 남조선에 대한 전면 공격을 전쟁을 개시한다는 보고를 받은 모스크바는 “통신의 비밀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모스크바와 평양 주제 쏘련대사관과의 모든 서신과 전문 교환을 중단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하여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조선인민군은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전면적인 공격에 돌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6.25전쟁이 시작됐고 3일만에 서울을 해방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가 부산까지 진격하지만 유엔의 개입으로 전쟁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6.25전쟁에서 중국의 참전 과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6-25 (조회 : 3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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