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후원안내

자유게시판

Home > RADIO >특집방송 > 기념일 방송

기념일 방송

6.25전쟁 진실에 과한 특집: 3회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한국전쟁 문서 (2)

방송일 : 2019-06-26  |  진행 :  |  시간 :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0:00:00

 

올해는 북과 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지 6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에 대해 북조선 당국은 전쟁이 일어난 그날부터 지금까지 남조선이 일으킨 북침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조선개혁방송은 6.25전쟁 69주년을 맞으며 6.25전쟁의 진실에 관한 기록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세 번째 시간에는 1994년 6월 2일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된 쏘련의 6.25전쟁 관련 문서 중에서 중국의 참전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일성이 스딸린과 모택동의 승인과 지원으로 6.25전쟁을 일으켰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상황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6.25일 새벽 4시, 38선 전 전선에 걸쳐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한 북조선은 3일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8월에는 부산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6월 27일 유엔안전보장 리사회는 남조선에 대한 군사지원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7월 1일 미국의 륙군 선발대가 부산에 도착했고 7월 5일 미군과 북조선 군대 사이에 최초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7월 1일 중국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는 주은래와 만나서 면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주은래는 미국의 개입을 비판했습니다. 7월초부터 스딸린은 미국이 38선을 넘는 것을 걱정했고 주은래는 7월 2일 쏘련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 지도부의 6.25전쟁 대비를 말했습니다.
주은래는 중국 지도부는 이미 목단강 지역에 12만명에 이르는 3개군단 병력을 지결시켜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스딸린은 7월 5일 베이징 주재 쏘련 대사에게 보낸 암호 전문에서 조선-중국 국경에 9개 사단의 중국군대를 집결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8월에 들어서면서 북조선 군대가 남조선의 거의 전 지역을 점령하고 남조선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남도 일부지역에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도 쏘련의 쓰딸린은 중국에게 6.25 참전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고 중국도 자체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7월 9일 주은래는 베이징 주재 쏘련대사 로신을 만나 모택동이 쓰딸린의 요구에 전적으로 동의함을 통보했습니다. 전쟁 초기 쏘련과 중국은 조선으로 무기와 군수물자들을 수송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김일성을 지원했습니다.
8월 말에 모택동은 두차례에 걸쳐 조선대표단을 만나서 전쟁상황에 대해 토론하게 됩니다. 이 토론에서 모택동은 조선전쟁이 두가지 형태로 전개될 것인데 첫 번째 경우는 인민군이 미군을 전멸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대로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택동은 조선이 후퇴하는 것에 대비해서 북조선의 군사력을 분산시키고 예비전력을 보유할 것을 지적합니다. 또 모든 군사력을 전투에 투입하지 말고 후에 신속한 퇴각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할 것을 말합니다.
1950년 9월 15일 미국은 인천상륙작전을 전격적으로 실행하여 조선반도의 중간을 점령함으로써 북조선 군대에 치명적 타격을 가합니다. 중국의 모택동은 베이징 주재 로신 대사를 계속 만나면서 조선전쟁 상황, 특히 인천상륙 작전 전후의 상황을 보고받습니다.
9월 23일 김일성은 총 후퇴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락동강계선까지 내려갔던 군대는 모두 후퇴하게 됩니다. 9월 28일 서울이 다시 남조선 군대에 의해 수복되고 10월 1일 남조선과 유엔 군은 38선 이북으로 북진하게 됩니다.
북조선 군대는 끊임없이 후퇴하고 9월 30일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쏘련의 스티꼬브 조선 대사를 만나 쏘련의 직접 출동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중국과 기타 사회주의 나라들이 국제의용군을 조직하여 출동하도록 원조해줄 것을 쏘련에게 요구합니다.
1950년 10월 1일 쓰딸린은 중국 베이징 주재 쏘련 대사에게 중국 의용군을 보낼 수 있다면 빨리 5~6개 사단이라도 38선에 진출시킬 것을 지시합니다. 쓰딸린의 지시에 대해 모택동은 적들이 38선을 넘은 시점에서 중국 의용군 몇 개 사단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당분간 지켜보겠다고 전문을 보냅니다.
처음에는 조선전쟁에 중국이 참전하는 것에 아주 적극적이였던 모택동이 당분간은 지켜보겠다면서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1950년 중순 주은래가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딸린과 중국 의용군 파병을 토론합니다.
이후 중국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조선에 파병하는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론쟁을 벌립니다. 격렬한 토론 끝에 가오는 조선반도 전체가 남조선과 미국이 점령하게 되면 중국에게 위험하다며 팽덕희를 설득해 즉각적인 조선파병을 모택동에게 건의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10월 24일 조선사태가 중국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토론 보고서를 중앙에 제출합니다. 모택동은 팽덕희를 비롯한 중앙 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선을 중국의 문턱으로 간주한다고 하면서 미국의 조선장악을 용서할 수 없으며 참전을 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1950년 10월 25일 중국은 의용군 형태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전쟁에 참전합니다. 원래 10월 1일에 3.8선을 넘여 북으로 진격해들어간 남조선 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10월 10일에는 원산을, 17일에는 함흥을 점령했습니다.
조선 서부에서 미군 제1군단은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하고 남조선 국군 제2군단은 10월 18일 양덕을 거쳐 10월 23일 청천강계선까지 진출합니다. 청천강 계선에 도달한 남조선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는 조선-중국 국경선을 향해 총공격작전을 개시합니다.
이리하여 10월 25일 박천-운산-온정리-희천을 련결하는 전선에서 압록강을 건넌 중국군대와 남조선과 유엔군 사이에 첫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중국의 류소기는 베이징 주재 쏘련대사 로신과 만나 중국군대가 남조선 3개 사단과 영국군 1개 연대를 포위공격하고 있다고 전달합니다.
중국은 조선전쟁에 30여만명의 군대를 참전시켜 전세를 역전시켜 남조선과 유엔군은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1951년에는 다시 서울을 점령했으나 3월에 후퇴하게 되고 이후 전선은 38선에 고착되고 1953년까지 3년간에 걸친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1994년 6월 2일 로씨야의 보리스 옐찐 대통령이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에게 공개한 조선전쟁 관련 문서에 기록된 내용뿐입니다. 중국의 모택동이 조선전쟁에 참전할 것을 구상하고 조직하고 지휘한 내용은 미국의 자료나 중국에서 공개된 일부자료에도 아주 많습니다.
스딸린은 김일성이 요구한 조선전쟁을 승인하는 첫 순간부터 전쟁상황의 변화에 따라 중국을 참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택동 역시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하는 시점부터 중국이 참전하는 것에 대비해왔고 참전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정전협정 체결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6-26 (조회 : 68)  |  북한개혁방송
Copyright ⓒ 북한개혁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