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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홍콩 200만명 시위특집 : 1회 홍콩의 200만명 시위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방송일 : 2019-06-19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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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9일과 16일 두 번에 걸쳐 홍콩에서는 력사상 최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6월 9일에는 백만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떨쳐나섰고 16일에는 20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 법 폐기를 웨쳤습니다. 이에 홍콩 행정장관은 범죄인인도법의 국회 통과를 무기한 연기한다면서 두 번에 걸쳐 시민들에게 사과했습니다.
홍콩의 200만명 초대규모 시위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로서 홍콩 인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여 조선개혁방송은 홍콩 200만명 시위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시간에는 홍콩의 200만명 시위는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알아봅니다.
 
6월 16일 홍콩의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중심의 거리에는 200만명의 시민들이 검은 옷을 입고 대규모 시위를 벌렸습니다. 평양시만한 규모인 200만명의 사람들이 도시의 한 지역에 모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지만 홍콩에서는 실현됐습니다.
홍콩 도시 중심의 대로는 물론이고 인도를 가득 채운 홍콩 시민들은 멀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시 중심을 가득채웠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 행정부가 추진하는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법 폐기를 웨쳤고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도 물러 날 것을 웨쳤습니다.
16일의 시위는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이 15일 이미 사과를 했는데도 이루어졌습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 통과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했는데도 9일의 100만명 시위의 두배가 되는 200만명이 시위에 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홍콩 시민들의 요구가 범죄인 인도법을 무기한 연기할 것이 아니라 완전한 폐기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6월 18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두 번째 사과를 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다음번 일요일에는 3백만명이 시위에 나설 것이라며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홍콩의 이번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지는 2014년의 우산혁명 시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2014년 홍콩의 24개 대학생들은 홍콩의 행정장관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를 개혁할데 대한 요구를 내세우며 시위를 벌렸습니다.
당시 학생시위대는 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으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렸는데 이 때문에 우산혁명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당시 학생들이 요구는 홍콩 행정장관을 중국의 간섭으로 임명하다 시피 하는 간접적인 제도를 직접 선거제도로 개혁하라는 것이였습니다.
2014년의 우산혁명 시위는 실패했지만 이번에 일어난 100만명과 200백만명의 시위는 범죄인인도법의 무기한 연기로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의 무기한 연기가 아닌 완전한 폐기를 요구하면서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며 투쟁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홍콩 시민들은 왜 범죄인 인도법 폐기를 요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범죄인 인도법이란 국가간에 맺어지는 조약으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잡게 되면 범죄자의 나라로 넘겨주는 법입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 특히 민주주의 국가들은 인도법을 국가간에 맺고 있으면서 외국에서 저지른 범죄자를 해당 국가로 넘겨줍니다. 그런데 이 법이 홍콩에서 문제가 된 것은 홍콩과 중국의 아주 특별한 관계와 함께 중국 시진핑 주석이후 강화되는 독재통치 때문입니다.
홍콩은 력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중국에 속해있었지만 1842년 제1차 아편 전쟁 이후 청나라가 당시 대영 제국에 양도했습니다. 그리하여 홍콩은 1997년 영국이 중국에게 홍콩을 넘겨주기 전까지 155년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왔습니다.
영국의 통치기간에 홍콩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1980년대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하나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이면서도 항공과 해상 교통의 중요한 거점으로 발전했고 홍콩의 국민 일인당 국민소득도 5만6천딸라가 넘습니다.
그만큼 홍콩 시민들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와 시장경제로 평균적인 생활수준도 높은데 여기에는 홍콩의 정치, 경제제도가 좋기 때문입니다. 1997년 영국은 중국에게 홍콩을 넘겨주면서 홍콩의 정치와 경제제도를 50년간 유지한다는 특별행정법을 통해 자치제도를 인정받았습니다.
때문에 홍콩과 중국은 일국량제, 즉 하나의 나라이지만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서로 다른 제도를 인정한다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진핑 주석 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위협받기 시작했고 홍콩의 시민들이 중국정부의 은밀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중국의 정치와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은밀하게 체포, 연행 하는 방법으로 탄압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에 홍콩 의 ‘퉁뤄완(銅?灣) 책방 주인과 관계자 5명이 실종된 사건입니다.
쿵뤄완 책방의 주인과 직원 등은 비밀리에 중국으로 납치되거나 체포되여 몇 년간 실종됐다가 1년이 지나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 정부의 탄압이 무서워 말하지 못하다가 3년이 지나서야 중국정부의 납치와 체포에 대해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홍콩 시민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못했고 중국 정부의 탄압을 두려워 했습니다. 퉁뤄완 책방 주인과 관계자들이 중국 정부에 체포, 납치된 원인은 퉁뤄완 책방에서 시진핑 주석의 련인들에 대한 책을 출판, 판매했다는 것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 외에도 중국의 정치와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작가, 책방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은밀하게 탄압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서 노골적인 납치와 체포 등으로 탄압하지 못하는 것은 홍콩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를 50년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범죄인 인도법이 홍콩 행정부에서 통과되면 중국정부는 중국 정치와 지도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홍콩인민들은 언제 어디서 체포되여 중국으로 넘겨져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영국의 통치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제도에서 자유롭게 살던 홍콩 사람들에게는 범죄인 인도법 통과는 최악의 공포이자 두려움이였습니다. 지난 2014년 대학생들이 벌린 우산혁명 시위 때에는 공감하고 격려하기는 했지만 시위에 떨쳐나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홍콩 시민들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게 되자 홍콩 시민 700만명 중에 200만명이 거리로 떨쳐 나선 것입니다. 2017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홍콩의 인구는 730여만명인데 현재는 7백50만명 정도 될 것이고 외부에서 온 사람을 빼면 7백만명 됩니다.
여기에서 로인과 어린이들을 빼면 약 6백여만명 정도 이하로 이런 것을 고려하면 홍콩시민 6명중 1명은 시위에 나선 것입니다. 말그대로 홍콩 시민들은 일치 단결하여 투쟁에 떨쳐나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인 인도법 통과를 저지 시켰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홍콩 200만명 시위의 과정과 전망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승철이였습니다.
입력 : 2019-06-19 (조회 : 83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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