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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시민사회

6회 민주주의 역사 - 민주주의 요람, 도시국가 아테네

방송일 : 2019-05-27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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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까지 민주주의 정의와 민주사회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절차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부터는 지금으로부터 2천8백년전의 고대 도시국가인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사회형성과 민주주의구현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볼 사회제도의 형성역사 모두가 다 민주주의 요건을 부족함이 없이 충족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각 시기와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과 기록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민주주의 기본 요소로 채택된 선거와 같은 민주적 관행과 의회를 비롯한 민주제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주사회 발전과정 역사를 오늘의 민주사회를 이해하는 참고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랜 역사적 시기에 어떤 사회든지 저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과제를 설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해법을 개발하여 왔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고대로 돌아가 민주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재미난 여정을 떠나 봅시다.
오늘은 능동적인 민주주의 토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고수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었던 고대 아테네의 궁정으로 먼저 안내하려고 합니다. 고대 세계로 돌아가 군주가 없고 인민이 주권을 갖는 정부의 형태인 공화정도 체험해 봅시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도시국가였습니다. 기원전 510년 민주정권을 성립하였으며, 아테네의 민주 정치는 매우 안정적이었죠. 또한 그리스 고전기에 아테네는 예술, 교육, 철학의 중심지였으며,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뤼케이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원전이라고 하면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 년대의 첫해부터 반대로 계산되는 년대를 말합니다. 기원전 510년이라고 하면 지금의 년대와 합쳐서 2529년 전이 되는 것입니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소포클레스 등 고대의 수많은 철학자, 저술가, 정치가를 배출한 유명한 도시국가였습니다. 기원전 5, 4세기에 당시 알려진 유럽 대륙 지역에 문화적, 정치적 업적으로 영향을 끼쳐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업적을 찬양하여 세상 사람들은 민주주의 시초를 일명 “아테네 민주주의”로 도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 도시국가인 아테네를 최초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곳으로 알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이상에 대하여 애기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테네 민주주의를 거론합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가 실천되었는데, 그것도 거의 완벽한 형태의 ‘참여민주주의’가 실천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테네 민주주의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노예제도가 존재했으며 여성들과 외국인 노예들은 완전한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지지 못했다는 결함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테네에서 민주정치가 시작될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테네에서의 민주정치가 시작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조건은 솔론에 의한 ‘농노 해방이었습니다.
기원전 600년경에 있은 솔론의 경제개혁은 정치변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솔론의 경제개혁으로 소지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이 이른바 민주정치의 주체가 되는 ’시민대표‘를 구성하고 사회와 군대의 주력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당시 솔론은 500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민회에 대비한 업무를 처리하게 했으며, 관료들의 부패와 착취를 막기 위해 인민법정을 설립하는 등 아테네 민주정치에 필요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도입했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 체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법과 행정에 대한 결정은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었죠.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는 모든 인민에게 부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그것이 시대적으로 상당히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시기에 입법과 행정에 대한 결정을 유권자의 투표에 의하여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수천 년이 지났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이것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주민, 노예,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성도 아무런 정치적 결정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가 주민의 절대다수가, 참여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인민이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래서 도시국가 그리스사회를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권력이 소수의 수중이 아닌 전체인민의 손에 있었습니다. 또한 공적인 지위에의 등용에서는 계급보다는 실천적 능력이 고려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생활에서는 자유롭고 관용이 허용되지만 공공업무에서는 법률을 준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개인이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무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사회로 인정하려면 ‘누가’에 초점을 맞추고 보아야합니다. 즉, 정치적 결정에 누가 포함되고 어떤 집단이 배제되는지를 따지는 것이죠.
이런 관점은 정치에 대한 그리고 경제에 대한 민주적 결정이 누구를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가 결정하는 가? 로 보는 시선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절차를 거쳐 선거와 심의, 직위 교체가 이루어진다 해도, 정부로부터 충성을 인정받는 최소 특권층만이 그 결정에 참여할 수 있으면 아닙니다. 또한 참여는 했지만 최고 지도자의 생각과 결정에 무조건 찬성표를 던져야 하고 참여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가 아닙니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이상은 로마 공화정의 원리와 함께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사상가들인 루소, 헤겔, 마르크스 등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주의 사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약점과 결함을 보완하려는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자유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를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로마에서 발원한 공화주의 전통에서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조현우였습니다.
 
입력 : 2019-05-27 (조회 : 9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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