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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전숙자씨가 잊지 못할 진수씨에게

방송일 : 2019-05-17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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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지금쯤 북녘에서도 모내기가 한창일겁니다.
해마다 밥숟가락을 드는 사람이면 누구나 농촌동원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북한 생각이 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기계가 농촌 일을 하다 보니 노인들만 있는 시골에서도 누구의 도움도 없이 농사일을 척척 해결하더라고요.
현대적 농기계와 과학의 힘으로 농사짓는 대한민국의 농촌을 보고 있노라면 내 고향 북한에도 저런 현대적 농기계들이 도입이 되어 그들도 빨리 자력으로 힘들이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전숙자씨는 학창시절, 잊지 못할 옛 친우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전숙자입니다.
대한민국과 달리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없는 북한 같은 나라에서 그 것도 평양의 제일가는 중앙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남달리 자랑스럽고 보람찬 청춘시절을 보냈지만 그 이 후의 제 삶은 제가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청춘시절을 보냈지만 누구보다 가슴 아픈 정치적 실책으로 그 정권에 모진 아픔도 당해 보았던 저입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련 속에 만났던 모든 분들이 다 소중하지만 대학시절, 저의 영원한 동지였고 존경하는 선배였던 한 사람만은 지금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선배가 제 목소릴를 기억할지는 몰라도 나의 순탄치 않은 인생사를 그가 이해해주고 어제 날의 우정을 떠 올려 본다면 그도 즐겁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진수씨에게
나의 정치적 생명의 보증인이었던 진수씨,
우리가 헤어진지도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군요.
벌서 제 나이도 80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되어 손자손녀도 여러 명이나 뙨답니다.
진수씨, 북한에서는 철저하게 동지로만 부르던 진수씨, 나이 70이 썩 넘어 한국식으로 진수씨, 라고 불러보니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조금 이상합니다.
수 십 년 세월이 흘렀어도 저는 단발머리 대학생 시절이 영원히 잊혀 지지 않고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 시절에 저는 대학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당과 지도자에게 충실한 어엿한 기사가 될 굳은 다짐을 했어요.
그 당시에 제 심정은 온 우주를 얻은 마음이었고 못해낼 것이 없다는 자부심으로 부풀어 있었죠.
그런데 진수씨, 1961년에 노동당 제4차대회를 앞두고 군과 현장에서 단련된 수많은 입당 못한 친구들이 조선노동당에 입당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군에 간적도 없고 사회생활경험이 없는 저 같은 직 발생들에게는 당에 입당한다는 건 너무 높은 문턱이었습니다.
밤늦게까지 학업성적이 미진한 친구들도 도와주고 민청사업은 물론 각종 근로노동현장으로 노동지원을 다니면서 많은 표창을 받았지만 입당규정상 현장체험이 없는 저 같은 학생들에게 입당은 여전히 꿈에 불과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고급 중학교나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직 발생들에게도 시범적으로 입당을 시켜 대학의 본보기로 내 세우는 일이 일어났죠.
그래서 저는 대학전원 민청 원들의 보증을 받고 노동당입당청원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상급 당에서 이 입당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보류가 되는 바람에 저를 비롯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얼마나 울었던지 그 일도 어제 같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학급의 세포위원장을 맡고 있던 진수씨가 이미 당원이 된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이 학생들을 책임지고 훌륭한 당원으로 키우겠다고 보증을 서 주시는 바람에 우리의 입당청원이 받아들여졌고 저는 꿈에도 바라던 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었지요. 
저는 저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축하해주던 진수씨와 세포내 당원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 후에도 저는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열성을 다 해 공부했고 민청에서 맡겨준 일에도 열성적으로 참가하면서 최 우수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지요.
사회에 나와서도 건설의 전초병 된 긍지를 안고 토목기사로서 그리고 직장에서도 기층 당 조직 책임자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 결과 최소 국가유공자로 수령님표창을 받았고 신문과 방송에도 소개가 되었어요.
그 대에도 제일 먼저 저를 축하해 주고 믿음을 주셨던 진수씨를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은 제 의지대로만 흘러가주지 않았어요.
외국유학을 갔던 제 아들이 먼저 한국으로 오는 바람에 우리 가족 모두가 평양에서 추방되어 함경북도 산골로 쫒겨 갔고 한국으로 간 아들 때문에 아오지탄광에서 6년이나 인간이하의 차별대우를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았어요.
그래도 저는 당을 믿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입당할 때 맹세대로 악착같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갔어요.
그러나 남겨진 나머지 자식들의 앞날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미래가 캄캄하더군요.
저는 살얼음이 흘러내리는 두만강을 목숨을 부지할 하등의 이유도 없지만 죽지 말고 살아야한다는 생각 하나로 자식들과 함께 건넜어요.
진수씨, 저는 한국에 와서도 나름 열심히 살았고 자식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무원으로 작은 기업의 대표로, 각자 아들들은 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답니다.
지금도 저는 내 힘이 닿을 때까지 열심히 살려고 마음 다지고 있고 저 때문에 북한에서 고통 받은 우리 혈육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 생각이에요.
여기 대한민국에 온 우리식구들은 각자의 책임과 의무가 있기에 통일 되는 그 날까지 앞으로도 계속 분투 할 거 에요.
진수씨, 진수씨는 저보다 많이 선배인데 아직 살아나 계시는지요?
세월의 시련과 고난이 우리를 이렇게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지만 진수씨는 제 인생에 너무나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귀중한 벗이기에 저는 제가 사는 날까지 영원히 잊지 않고 살 겁니다.
진수씨, 이제 통일이 되면 우리 꼭 만나요.
그러니까 진수씨, 절대 죽지 말고 살아계셔야 합니다.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부디 건강하세요.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대하면서 저 역시 건강하게 열심히 살 겁니다. 진수씨, 모든 것에 정말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름의 길목에서 전숙자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청춘시절을 떠 올리면 사람들은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한 두 가 지쯤은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죠.
그 것이 사랑이었든 우정이었든 심지어는 악연이었든 말이죠.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그 사람은 한 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거든요.
누구나 흘러간 세월 속에 아름다운 추억 한 두 개쯤은 간직하고 있겠지만 전숙자씨의 지난 추억은 남달리 더 소중한 추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의 닻을 대한민국이라는 포구에 내리고 오늘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계시는 전숙자씨의 북한사시는 소중한 친구 분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저도 바라면서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5-17 (조회 : 278)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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