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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이탈리아 편 (2)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역사의 근간을 찾아서, 로마

방송일 : 2019-05-14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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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마음대로 떠나는 자유여행의 이야기꾼 김소라입니다. 오늘은 유럽대륙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유럽의 여러 도시를 다녀왔지만, 오늘 가볼 로마야말로 유럽여행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죠. 사실 유럽여행뿐만 아니라, 제 개인적으로는 세계여행의 가장 최고봉에 있는 도시로 추천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알고 계시죠? 고대 그리스 로마는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문명을 만들어낸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각종 신화와 전설을 많이 만들어냈죠. 태양의 신 아폴로, 사랑의 신 비너스, 그리고 이들 신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 제우스 등.. 실존하지 않는 일종의 미신이지만, 이 신화는 인류 문명 여기저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입니다.
사실 로마 하면 기독교 역사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말 그대로 허구의 신화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기독교 이야기는 로마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역사적 사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살아 활동하던 기원 후 1세기 근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천여 년 전쯤 활발하게 꽃피운 기독교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고대 로마가 모든 정치, 문화, 역사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요. 그만큼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그야말로 세계를 제패한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지금의 미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로마는 유대 종교인 기독교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전 세계 1/4을 차지한 대제국 로마의 법에 유일하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마치 북조선처럼 황제가 그 자체로 신격화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뿐 아니라 모든 식민지인들도 황제를 신으로 숭배해야 했지요.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 양심에 따라 황제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곤 로마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자신들의 신앙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로마 입장에서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행위는 로마의 국력과 국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로마는, 기독교가 융성하기 이전에는 식민지에 대한 나름의 온건 정책을 펼쳤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신교 국가, 그러니까 다양한 신을 믿는 국가였던 로마였기에 원래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믿었습니다. 그런 로마의 문화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이 바로 [판테온]이라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엄청나게 크고 거대한 돌  기둥 뒤로 둥그런 돔 모양의 공간이 마련된 신전입니다. [판]이란 “모든”을 뜻하고, [테온]은 “신전”을 뜻하는 말인데요. 이 [판테온]에서 로마인들, 그리고 식민지인들은 아무 때나 아무 대상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다양성을 추구했지만, 1세기 초, 로마의 작은 식민지 중 하나였던 이스라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에 따라 로마는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참 신은 로마 황제가 아닌 유일하신 하나님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대신해 죽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했다는 복음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이스라엘 곳곳 그리고 로마로 퍼져나갔습니다. 다신교였던 로마에게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는 그들의 정치 이념을 위협하는 존재였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최고신인 황제에게 절하지 않는 반역자들이고, 황제와 노예가 평등하다 말하는 불순분자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사상을 용납할 수 없었던 네로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같은 황제들은 아주 잔혹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잔혹하게 박해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불을 질러 등불로 사용했고, 커다란 원형 경기장에는 며칠 굶은 맹수들을 풀고 거기에 기독교인들을 던져 넣어 물어뜯기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피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 바로 로마 시내 중심에 있는 [콜로세움]입니다.
이 곳은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어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기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는데요. 내부로 들어가면 과연 이것이 2천 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어 잠시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약 5만 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원래는 공연이나 마차 대결 등을 즐길 수 있는 극장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 정책을 시행하면서, 이는 피비린내 나는 학살의 근거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저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이들의 신앙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비슷한 상황이 내게 온다면 나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입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로마 시내 한 편에는 [카타콤베]라고 하는 거대한 지하 무덤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로마 성벽 안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시 외곽에 시민들을 위한 지하 무덤을 형성하도록 했습니다. 로마 국법에 의해 무덤은 신성한 장소로 안전을 보장받았으므로,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던 바울과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가매장된 이후 이 곳은 기독교 순교자들을 안전하게 매장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가 점점 융성하게 됨에 따라 이곳은 비밀스럽게 숨어 예배하고, 신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곳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 군인들이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무덤을 드나들었는데, 그럴수록 신자들은 더욱 깊은 곳까지 숨어들어 지하 4-5층 규모의, 약 천 키로가 넘는 미로 같은 갱도가 형성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서로 신분을 확인하고자 물고기 모양의 특별한 표식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이크투스]라고 하는데, 이는 [이수스]: 예수, [크리스토스]: 그리스도, [테오]: 하나님의, [우이스]: 아들, [소테르]: 구세주라는 단어의 앞머리만 따서 발음한 것과 동일한 표기를 씁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 물고기 표식을 사용하며 서로의 신앙을 다져나갔습니다. 제가 [카타콤베]에 방문했을 때에도, 지하 돌 벽 여기저기에 [익투스] 물고기 표식이 새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빛 한 줄기 없이, 으스스한 지하 무덤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애썼던 고대 기독교인들의 절박함이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여행의 꽃, [바티칸 박물관]과 [성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바티칸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그러나 규모와 화려함의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특히 이 곳에는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어 더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로마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천주교 교황청이 있는 도시이자 곧 나라인 [바티칸 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바티칸 시국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이라는 곳 천장에, 인류문화의 보물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지요. 14-16세기 인류 문화가 가장 융성하게 꽃피우던 [르네상스] 이야기를 어릴 적 교과서에서만 봤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보던 그 역작을 제 눈으로 직접 볼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미술의 미 자도 모르는 저였지만, 이게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하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장도, 도구도,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기에 도대체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이런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아파트 몇 층 높이나 되는 저 높은 천장에...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풍족한 시기이건만, 왜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걸까.. 하는 질문도 하면서 말입니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지난 번 독일 비텐베르크에 갔을 때 들려드린 종교개혁가 루터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면죄부를 팔던 종교인들에게 반발하여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해 비텐베르크 교회 성문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설명 드렸잖아요. 그 면죄부가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일단, 성 베드로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 통로의 길이만 약 186m, 폭은 140m, 높이가 46m입니다. 아파트 한 층 높이가 3m 정도라고 보면, 15층 정도 높이가 되겠네요. 이 성당은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그의 제자인 베드로의 묘지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어쨌든, 성당의 규모를 보면 왜 면죄부를 만들어 팔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상황이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사방을 순금으로 두른 어마어마한 성당 크기를 보며, 이 건물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화려한 건물을 원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뭐랄까, 정말 화려하고 멋있는 건물인 것은 맞지만, 마치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보듯, 이 건물이 지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떠올려보면 그리 아름답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그런 기분이요.
인류 문화유산의 최고봉을 보여준 이 로마를 끝으로, 유럽 여행의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로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워낙 볼거리가 많은 터라, 로마를 먼저 보고 다른 곳에 갔더라면 시시할 뻔 했거든요.
오랜 역사와 전통,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유럽 대륙을 떠나 이제 다음 주부터는 [신대륙]이라 불려졌던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고자 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실거죠?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입력 : 2019-05-14 (조회 : 76)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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