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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황수련씨가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방송일 : 2019-03-22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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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눈 구경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겨울은 춥습니다. 저는 영하 2~30도를 웃도는 북쪽에서 살아 보았기에 눈보라치는 혹한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압니다. 북한에도 지난겨울 아주 고산지대 말고는 대부분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고 하니 걱정거리 가득한 분들에게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시커먼 나뭇가지마다 작은 움이 아주 귀엽게 빠꼼히 머리를 내 밀고 차례로 꽃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 또 새봄이 시작되었구나.
저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작고 파란 새싹들을 보며 살아가는 것에 새삼 고맙고 즐거움을 느껴 보았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황수련씨는 지척에 두고도 볼 수 없는 오빠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금강산의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강원도, 고성의 시골 마을에 그립고 보고 싶은 오빠가 사신다고 합니다. 오빠와 수련씨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을 떠난 지도 오래 되었고 더구나 오빠와 헤어진지는 23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와도 전화도 할 수 있고 맘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여행도 다니는 세월에 엎어지면 코가 닿을 강원도 지척에 오빠가 있는데 이렇게 생사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남과 북은 서로 정치가 다르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만날 수도 없고 지금도 서로가 원수가 되어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던 때 굶어죽지 않으려고 북한을 떠났고 그 이후로는 오빠의 소식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북한개혁방송의 파랑새체신소를 찾아 왔고 그리운 우리 오빠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가 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척에 두고도 만날 수 없는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랑하는 오빠에게
오빠, 저 동생 수련입니다.
오빠, 그 동안 잘 있었나요?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해도 제 목소리까지 잊으시진 않으셨겠죠?
오빠와 헤어진지 2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오늘에야 비로써 이렇게 오빠에게 편지를 하는 이 동생을 많이 원망하시죠?
오빠, 오빠도 이젠 많이 늙으셨겠죠.  자란 모습은 잘 몰라도 늙은 모습은 알아 볼 수 있다고들 하던데 ...  제가 오빠와 헤어질 때 50대를 갓 넘긴 모습이었는데 80이 다 되어오는 오빠 모습은 상상이 잘 안됩니다.
혹시 살아나 계시는지.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그리고 제가 오빠 집에 갔을 때 살아 계셨던 우리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뜨셨겠죠?
열 천 가지 걱정이 들지만 어느 한 가지도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우리가 사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쯤 돌아 가셨을까, 마지막까지 딸의 이름을 부르셨을 어머니 모습과 한 번도 온전한 효도를 해 드리지 못한 불효한 딸이었다는 자책감에 눈물만 납니다.
오빠, 우리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견딜 수가 없어요.
벌레도 짐승도 아닌 인간이 매일 먹을 것이 없어 여기저기로 헤매고 다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제가 오빠네 집에 찾아 간 적이 있잖아요.
그게 아마 96년도 다 저물어 가던 늦가을 이었을 거예요.
거지같은 내가 가지고 가던 짐 보따리까지 역전에서 도둑 맞히고 빈 손으로 오빠네 집에 갔는데 형님과 조카들마저 저를 거지 취급했어요.
그래도 혈육이라고 강원도 고성으로 얼마나 어렵게 오빠집이라고 찾아 갔는데 그렇게 혈육들마저 거지 취급을 하니 저는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수모를 받고 돌아 선 것이 오빠와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어요.
오빠네 집에서 떠나던 날, 제가 화물차 위에 앉았는데 불쌍하고 가련한 딸을 바래준다고 자동차 밑에서 올려다보던 우리 어머니, 한없이 순진하고 정 많으신 우리 어머니 눈에 눈물이 맺혀 가을 찬바람에 얼어버린 주름진 얼굴로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내가 “엄마, 추운데 집에 들어가세요” 그러니까 몇 발짝 가시다 돌아서시고 또  몇 발짝 가시다 돌아서시던 우리 어머니 모습이 제가 세상에 태어나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 모습이 될 줄 그 때는 정말 몰랐어요.
그 순간, 저도 막 울고 싶었는데 억지로 참고 오빠의 얼굴만 찬찬히 보았어요. 그렇게 자동차는 떠났고 그 짠한 모습이 오빠와도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부모를 잘 못 만난 것도 아닌데 우리는 나라를 잘 못 만나 이렇게 배가 고파 혈육이 서로 미워하며 하지 말아야 할 아픈 이별을 하면서 살아야 했어요.
오빠, 저는 그렇게 오빠 집을 떠난 후에도 늘 먹을 것을 찾아 헤맸어요. 그렇게 헤메고 다니면서 보니 굶어서 매일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나라도 못 척 하더라고요. 그러니 혈육인들 무슨 방법이 있었겠어요.
저는 매일 거지, 도둑들이 새로 생기고 죄 없는 사람들이 굶어죽는 걸 보면서 정신이 조금 들었습니다.
아, 이러다 어느 날, 나도 저렇게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결국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다시 3국을 거쳐 지금은 우리가 북한에서 남조선이라고 부르던 한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오빠, 오빠는 이 동생이 북한에서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가 십중팔구는 굶어죽었을 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의 목숨이란 게 정말 맥도 없다, 싶기도 하고 질기기도 한 것 같아요.
오빠,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오빠네 집까지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데 동생이 이렇게 한국에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조차 전할 길이 없다는 게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전 오빠가 보고 싶고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고성 통일전망대에 가 보는데 소리쳐 부르면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 올 것 같더라고요.
오빠~ 오빠~ 나 여기 고성에 왔어요. 그렇게 소리치면서 북쪽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오빠, 자칫 길가에서 이름도 없이 굶어죽을 뻔 했던 동생은 지금 한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불쌍하게 사시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와 오빠 몫까지 합쳐서요.
오빠, 어떻게 하나 버티고 살아 남아주세요. 이 동생을 만나야 하잖아요.
이제 통일이 되면 우린 반드시 만날 수 있으니까 오빠는 건강하게 꼭 살아 계셔야 합니다. 오늘도 두 눈 곡 감고 오빠의 얼굴을 그려 보는데 80대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고 우리가 헤어지던 그 젊고 멋있는 모습만 생각나네요.
나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간절하게, 간절하게 통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통일이 되겠죠.
통일이 되면 제가 제일먼저 오빠를 찾아 갈게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거든요.
오빠, 항상 건강하게 사셔서 하나분인 이 동생을 꼭 기다려 주세요. 제가 오빠를 만나면 그 동안 못 한 이야기 나누면서 정성으로 오빠를 잘 모실 겁니다.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기다린다는 걸 명심하시고 꼭 기다려 주세요...꼭...꼭...
오빠, 아쉬운 펜을 오늘은 여기서 놓을게요.
안녕히 계세요.
경기도에 사는 동생 황수련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가요. 과연 얼마나 더 참고 또 참아야 적어도 배고픈 걱정이 없이 살 수 있을까요?
너무 배가고파 저도 안 먹어 본 풀이 없는 사람이지만 황수련씨의 가족들이 겪은 시련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낳아주신 어머니와 오빠도 도아 줄 길이 없던 지긋지긋하고 몸서리치는 가난, 지난 날 들에 대한 추억이 아픈 만큼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행복의 가치도 소중할 겁니다.
착하고 순진한 황수련씨의 오빠가 동생의 편지를 정말로 받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북한 사시는 황수련씨의 오빠분이 한국에 사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바람대로 동생을 만나실 때까지 꼭 건강하게 살아주시길 바라며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3-22 (조회 : 33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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