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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유럽편 (10) 베를린의 중심에서 통일을 외치다

방송일 : 2019-02-26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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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마음대로 떠나는 자유여행의 이야기꾼, 김소라입니다. 오늘은 시작 전부터 제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왜냐하면, 청취자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곳을 소개해드리기 때문이죠. 오늘의 여행지는 바로~ 통일의 성지 베를린입니다.
아시다시피, 베를린은 분단 독일 시절 동독의 수도였고 동서독이 통일된 후에도 계속 수도의 명맥을 이어왔는데요. 한민족이 그토록 바라는 통일이 이루어졌던 이 역사적인 장소에 오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독일의 영토는 세로로 아주 조금 더 긴 형태인데, 베를린은 가장 동쪽의 약간 윗 편에 자리해 있는 도시입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베를린의 이곳저곳을 여행해 보실까요?
베를린은 대중교통이 매우 잘 발달한 곳이어서,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타고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7유로, 그러니까 8달러를 내고 차표를 끊으면 베를린의 모든 지하철과 버스를 하루 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아주 편하죠. 그래서 저는 여행을 시작함과 동시에 차표부터 구입했습니다. 그리곤 베를린 여행 지도를 펼쳤습니다. 역사도시답게 가볼 만한 곳이 정말 많았는데요. 일단 숙소가 위치해있는 서쪽부터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숙소를 예약할 땐 미처 몰랐지만, <카이저 빌헬름 교회>라는 아주 독특하고 유명한 교회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어요. 정말 다행이었죠. 이 교회의 별칭은 <썩은 이빨>이라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맞아 교회 제일 윗부분이 깨져서 정말 썩은 치아처럼 보이더라고요. 역사를 중요시하는 독일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교회를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대신 바로 옆에 육각형 모양의 새로운 교회를 지었는데, 내부는 온통 푸른빛 돌 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정말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제가 갔을 때는 어떤 악단들이 관현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감상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교회 구경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 거리의 이름은 <쿠담 거리>인데요, 베를린 시내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라고 하네요. 역시나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백화점인 카데베 백화점이 으리으리하게 자리해 있었습니다. 11월 초의 독일은 꽤 추워서 따뜻한 겉옷을 입었는데도 찬바람에 손이 시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베를린 시민들은 저만큼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추위에 익숙한 것인지.. 얇은 옷을 입고도 전혀 추워 보이지 않더라고요. 유럽의 다양한 인종 중에서도 독일 사람은 게르만 민족의 후손이어서 기골이 무척 장대합니다. 제 키가 171cm인데요, 여자 치고는 매우 큰 키지만 독일에 가니 꼬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만큼 독일 사람들은 보통 저보다 손바닥 한 뼘 정도는 더 컸어요.
그렇게 베를린 거리와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지하철역에 도착했습니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사실 그렇게 좋은 시설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각 구간별로 환승이 아주 쉽고 역간 거리가 가까워 여행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통수단이 됩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드디어 베를린의 상징적인 건축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분단 시절 동, 서독의 경계가 되었던 높이 26m, 폭 65.5m에 달하는 커다란 문입니다. 꼭대기에 승리의 여신이 탄 마차를 끄는 네 마리 말을 청동으로 조각해 두었고, 여섯 개의 기둥이 이를 받치는 형상으로 되어 있는데요. 마차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동독이었고, 마차 뒷부분 지역이 서독이었다고 합니다. 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도 잠시 방문했습니다.
보안이 철저한 곳이라서 사전 방문 예약을 해야만 들어가 볼 수 있고, 입장하기 전에 보안 검색대를 여러 차례 지나야만 합니다. 의회 안에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로 돔 모양의 천장에, 둥글게 회전하는 통로를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별다른 특징은 없었지만, 독일 정치의 중심부에 와봤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워졌어요. 무엇보다 꼭대기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베를린 시내 전경이 일품이었죠.
내려와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독일 자체가 음식이 그리 맛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일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음식들이 있죠. 일단 독일은 맥주의 나라이고, 소시지라고 해서 북한의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있어요. 돼지 내장 안에 야채를 넣는 순대와 달리, 소시지는 간을 한 고기를 채워 넣어 길쭉하게 만든 건데 쫄깃한 식감이 아주 좋아요. 북조선에서는 칼파스라고 부른다죠? 그 외에도 학센이라 해서 돼지 족발이 있고, 슈니첼이라 하여 튀긴 고기 요리도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바로 <커리 부어스트>라는 음식이라고 해요. 이 음식은 소시지에 토마토 양념과 인도식 향신료인 커리 가루를 뿌려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데요, 마침 부근에 가장 유명한 가게가 있어 한 번 먹어보았습니다. 으.. 솔직히 말하면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독일의 음식은 매우 짭니다. 밥 반찬이라면 모를까, 단독 요리로만 먹기엔 너무 짜서 사놓고 다 먹질 못했답니다.
점심을 먹고 나와 아주 조금 걷다보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매우 독특한 전경이 보였습니다. 짙은 회색의 직사각형 콘크리트 층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모양은 같지만 높이가 제각각이라 멀리서 보면 마치 파도 같기도 하고, 키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이곳은 세계대전 시기, 나치 히틀러에 의해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을 추모하고자 조성한 기념비입니다. 설치된 콘크리트 층의 수는 모두 2,711개이며, 전체 면적은 19,000제곱미터로 축구경기장의 약 2.5배 크기입니다. 실제 높낮이가 다른 콘크리트 층은 학살당한 유대인 개개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수도 한 복판에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직하게 공개하고, 후대들로 하여금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갖도록 노력하는 독일 민족의 성숙함이 엿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박물관 섬> 쪽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에 각종 박물관과 성당 등이 자리해 있는데요, 역사가 오래 된 유럽답게 모든 건물양식은 독일의 기나긴 세월을 담아내고 있어 무척이나 고풍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없어 모든 곳을 다 둘러볼 수는 없고, 가장 오래되고 큰 건물인 베를린 대성당에만 가 보기로 했습니다. 입장료는 7유로였는데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버렸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라고 해서, 유리에 색을 입혀 햇살이 통과함에 따라 다른 빛을 내게 하는 고전 미술 양식이 있는데요,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눈에 다 담기지 않을 만큼 높고 넓은 성당 내부 전체가 이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성당 뒤편으로는 꼭대기 탑까지 올라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이 있었는데요, 베를린의 야경을 보기 위해 힘들고 피곤했지만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좁은 통로를 계속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올라가 보니, 드디어 베를린 성당의 청동 돔 꼭대기에 다다랐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베를린 시내는 정말 운치 있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바로 <체크포인트 찰리>라는 유명한 명소입니다. 사실 베를린에 왔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분단,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역사를 살펴봐야죠. 체크포인트 찰리란, 분단 독일 시절 베를린 장벽에 있었던 검문소의 이름입니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연합군과 외국인, 여행객들이 동, 서 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는데요, 주요 업무는 서독의 연합군이 동독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록하고, 동독에서의 체류지를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이 검문소도 철거되었는데요. 현재는 당시 검문소를 재현해 놓고, 동독과 서독 군인 분장을 한 사람들이 서서 관광객과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냥 평화롭기만 하고,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는 이 장소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동족끼리 총칼을 마주대고 있던 곳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 베를린의 자유로운 공기는 마치 꿈만 같았습니다. 통일이라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평화적으로 잘 해 냈고, 지금은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독일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죠. 시인 이상화의 유명한 시가 떠올랐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을 갈망하던 민족의 한이 가득 담긴 이 시처럼, 분단의 현실 앞에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저의 마음도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도, 분명 봄날 같은 평화가 올 것이라 믿으면서요.

짧지만 강렬했던 베를린에서의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제 다음 여행부터는 독일의 동편, 냉전시기 철의 장막의 일부였던 체코로 넘어가 봅니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입력 : 2019-02-26 (조회 : 102)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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