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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방송

김정일 생일특집: 1회 인간 김정일은 어떤 사람인가

방송일 : 2019-02-18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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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김정일의 생일을 맞으며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인간 김정일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알아봅니다. 
지난 2011년 12월 강성대국 선포를 불과 열흘정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당과 지도자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김정일이 선포했던 2012년 강성대국 달성이 정말로 실현될 것이라는 미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소위 광명성절이라는 김정일 생일이 또 돌아왔습니다. 평양에서는 김정일을 숭배하는 선전과 학습, 행사들이 열렸으며, 텔레비죤에서는 김정일 위대성과 업적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충격속에 눈물을 흘린 것은 김일성은 죽지않는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을 때에는 정말로 우는 사람보다 우는 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는 중풍에 걸려 몇 년을 앓으며 쇠약한 환자의 모습을 보여준 그의 모습을 보고 지도자도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인민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을 세계 최악의 절대독재 세습국가로, 최악의 인권탄압국가로 만든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입니다. 또다른 리유는 현실이 험악한데도 김정일위원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가 된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김일성 주석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김일성 주석 통치시기의 삶의 수준이 지금보다 나았으며, 수령님 만세와 만수무강을 외치며 충성만 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국가운영의 권한을 놓고 대립했습니다. 중앙당과 국가보위부의 고위급 간부들의 회상에 의하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이 서로 대립하고 싸운 원인은 가족 내부의 문제 때문이였습니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과 대립하고 싸운 원인은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이 죽은 원인, 그리고 아버지가 후처 김성애와 그 자식들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1945년 9월 평양에 진주해 군정통치를 시작한 쏘련군은 쓰딸린의 인정을 받은 김일성을 북조선 지도자로 내세웠습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된 청년 김일성은 매일 같이 그 유명한 평양의 기생들을 끼고 밤을 즐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었고 해방산 기슭의 김일성 집에서는 김정숙과 싸우는 소리가 자주 크게 났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데다 고집도 센 김정숙보다는 키도 크고 잘 생긴 타자수 김성애와 바람이 난 김일성은 몇 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1949년 임신을 한 상태의 김정숙은 남편에게서 버림받다시피 되자 참지못하고 김정숙은 쥐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김정숙은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는데 이때 김정일의 나이가 9살이였습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의 집에서 살던 오극렬이 만경대혁명학원으로 가게되자 혼자 남은 김정일은 오극렬을 따라가겠다고 일주일이나 떼를 썼다고 합니다. 무척이나 외로웠던 김정일은 매일같이 같은 동네의 최현네 집에 가서 최룡해와 놀았다고 합니다.
훗날 김정일이 오극렬, 최룡해와 의형제를 맺었던 것은 자신이 가장 외롭고, 서럽게 살았던 어린시절 친한 친구들이였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김성애와 정식으로 살면서부터는 이붓 어머니 밑에서 눈치를 보면서 힘들고 서러운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두 번째 부인인 김성애는 키도 크고 곱고 잘생긴데다 아들 세명과 딸을 낳았고 김정일은 외톨이가 됐습니다. 어린 김정일은 아버지와 이붓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이복 동생들에 대한 증오를 마음속에 쌓으면서 성장했습니다.
한편, 김정일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40대의 젊은 아버지 김일성을 부축하고 신발을 신겨주는 등 아버지 눈에 들려고 무척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김일성이 1960년대 후반에 키 크고 잘생긴 이복동생 김평일을 후계자로 정한 아휴 원한이 극대화 됩니다.
어린시절의 외로움과 눈칫밥을 먹으며 증오와 복수심을 키운 김정일이었기에 이붓어머니 김성애와 그의 아들들을 누르고 후계자에 오르게 됩니다.
후계자가 된 김정일은 1974년에는 로동당 조직비서가 됐고 이때부터 아버지의 권력을 서서히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부터 3대혁명소조사업을 틀어쥔 김정일은 김일성의 당을 자신의 당으로 만들었고 조선의 핵심권력을 기본적으로 휘어잡은 것입니다. 김정일은 로동당과 문화예술분야를 완전하게 틀어쥔 1970년대 말부터 아버지 김일성에게 본격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던 것입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분노와 증오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김정일은 1980년대에 들어와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만들었습니다. 수령님을 모신다면서 김일성 주석에게 가는 모든 정보를 차단했고 경제가 어려워졌음에도 문화예술을 내세웠고 전국에 특각과 별장을 건설했습니다.
1980년대에 북조선 경제가 파산상태에 직면한 것은 김정일이 자신의 절대권력을 위해 모든 능력을 썼기 때문입니다. 1991년대에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최고사령관 자리까지 빼앗았고 이붓어머니 김성애는 가택연금 상태로 가두어 놓다시피 했습니다.
1994년 북남 최고위급이 성사되었을 때 김일성이 서울에 가려고 했던 것은 김정일에게서 권력을 되찾으려는 생각도 컸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은 2시간 넘게 전화로 싸웠는데 이 때문에 김정일이 김일성 주석을 죽였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와 분노, 복수심으로 가득찬 성품을 가진 인간 김정일의 진짜 모습이고 북조선에 만들어놓은 절대권력의 본질입니다. 사람이 좋은 부모, 좋은 가정,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면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려서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외톨이로 컸던 김정일은 증오와 분노, 복수의 심성이 점차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김정은 위원장이 고모부와 맏형을 잔인하게 죽였던 것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증오와 복수의 심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어떤 지도자였는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 2019-02-18 (조회 : 155)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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