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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이필순씨가 사랑하는 손녀에게보내는 편지

방송일 : 2019-02-15  |  진행 : 김정현  |  시간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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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인생을 살다보면 잘 한 일 보다 후회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땐 이렇게 했을 걸, 그 날엔, 요렇게 했던 걸, 그 순간엔 왜 내가 그랬을까...  하지만 후회가 후회로만 끝난다면 그건 정말 의미 없는 인생이겠죠.
그런 후회들을 통해 얻는 소중한 경험과 교훈이 있어 조금 더 힘을 내고 용기 내어 다시 한 번 잘 살아볼 방도도 찾게 되거든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후회 없는 삶, 새로운 터전에 새롭게 뿌리내린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래서 후회 없는 삶이란 더 간절한 것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저녁 우리 파랑새체신소를 찾으신 이 필순씨도 자식들에게 손자손녀들에게 한 번도 잘 해주지 못한 죄책감, 후회로 늘 가슴이 아 프시다고 합니다. 이 필순씨는 사랑하는 손녀에게 용서도 빌고 싶고 이제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시며 그리운 손녀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럼 그 사연을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파랑새 체신소 >편지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제 음력설도 다 지났으니 우수 경칩이 되면 대동강 얼음도 다 풀리겠지요.
수많은 인생의 시련을 겪으며 수많은 후회를 하며 제가 한국으로 온지도 10년이나 되어 갑니다. 돌이켜 보면 어쩔 수 없는 시련도 있었고 아프게 남아 후회되는 시련도 있습니다.
평범하게 그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이 북한에서의 제 삶이었지만 그 보잘 것 없는 배급과 월급마저 없어진 다음부터는 가정의 행복마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시련이 오자 온 나라가 거지가 되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가난 속에 배고프다고 우는 손녀에게 사탕 한 알 사줄 수 없었던 할머니의 심정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손녀애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직도 이 할머니를 원망하며 살고 있는지. 미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천사처럼 이쁜 사랑하는 손녀에게 정말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북한에 사는 손녀에게 전한다.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그 동안 잘 있었니.
지혜야, 나 할머니다. 혹시 10여년이나 되었으니 네가 할머니 목소리를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 늘 내 곁에서 제비처럼 참새처럼 매일 재잘거리던 네 목소리를 뒤로 하고 할머니가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되어오는구나.
세월이 너무 빠르구나. 나는 늙어가는 모습이니 별로 변한 것이 없지만 너는 자라는 모습이라 이제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 같구나.
지혜야, 미안하다. 할머니 때문에 너희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단련을 받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심지어 내가 집을 나올 때 네가 자구 따라 오겠다고 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잠간 어디 갔다가 저녁에 꼭 온다며 거짓말을 하고 왔지.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도 늘 마음에 걸린다.
사랑하는 손녀딸아, 또, 한 가지는 네가 학교에 갈 때마다 네가 학교에서 돈을 가져오란다며 돈을 달라고 했는데 많지 않은 돈이었지만 매일 살기 어려운 형편이라 돈도 못 주면서 욕까지 하면서 학교에 보냈잖아. 그것도 할머니가 너무 미안하구나.
온 나라가 하루를 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학교는 무상으로 배워준다고 하면서 매일같이 돈을 내라고 하니 그 땐 정말 짜증밖에 안 났어. 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학교가 미운거지 할머니는 내 손녀가 미워서 욕을 한 건 절대로 아니었거든.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요즘 너네집 식구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네 아버지, 어머니 집식구들 다 건강한지, 굶지 않고 세 끼 죽이라도 먹고 있는지, 넌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지?
할머니는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소식 한 장 전할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내 손녀 지혜야, 이렇게 너희들 소식이 궁금하고 미칠 듯이 보고 싶은 날에는 할머니는 TV를 보던가 아니면 신문이라도 들여다본단다.
뉴스에 북한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통일이 될 수 있는 조그마한 희망이 담긴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날은 기분이 너무 좋아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단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과 북이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통일을 위해 노력하노라면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던 통일이 정말로 올 수도 있지 않겠니.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할머니는 한국에 와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단다.
오히려 북한에 있을 때보다 더 건강하고 젊어진 기분으로 매일 즐겁게 살고 있단다.
북한에 비교하면 남조선이라는 곳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젊은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학생들은 자기가 바라는 희망을 꽃피우기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단다.
자본주의사회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하기 때문에 선택도 잘 해야 하고 누구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해 노력해야 한단다.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남조선은 복지가 잘 된 나라라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진짜 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지혜야, 우리가 다시 만나보고 싶어도 아프면 안 되잖아. 그래서 할머니는 사랑하는 내 손녀를 꼭 다시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어.
사랑하는 손녀야, 먹을 것이 없어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던 북한에 비하면 여기는 어디가나 먹을 것이 지천인데 넘쳐나는 먹을거리를 보면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 앞에만 앉으면 너 네 식구들, 그리고 손녀 생각이 나 선뜻 숟가락을 들 수가 없고 항상 목이 메어 삼키기가 어렵단다.
그리고 마구 버려지는 음식을 볼 때면 북한 생각이 나고 가슴이 아파 두 눈을 꼭 감고 일부러 못 본 척 할 때도 있어.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참, 할머니가 너에게 주려고 이쁜 옷도 많이 사 놓았어. 그런데 우리 손녀가 얼마나 컷을지, 어떤 옷을 좋아 할지를 잘 모르잖아. 그래서 할머니 취향에 맞게 요즘 젊은 아가씨들 좋아하는 옷으로 고르긴 했는데 네 맘에 들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해 마다 한 두 벌씩 사 놓은 옷이 보자기에 쌓여갈수록 너에 대한 그리움은 그 몇 배로 쌓이는 것 같구나.
사랑하는 손녀야,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하는 혈육이고 너와 나는 친 할머니와 손녀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요즘에는 할머니가 혹시 이러다가 통일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우리 손녀 못보고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단다.
그러다가도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짠, 한 내 새끼들 꼭 다시 만나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나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살려고 애를 쓴단다.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부디 아버지, 어머니 잘 모시고 이 할머니를 만날 때가지 잘 살아 있어주기를 할머니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지혜야, 하루에도 몇 번 저 분계선 너머 내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달려가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마음, 편지로나마 이렇게 전하고 싶었어.
너는 할머니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보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말은 태산 같지만 이 작은 종이에 할머니의 마음을 다 적기엔 너무 부족하구나.
사랑하는 내 손녀 지혜야,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건강하게 반드시 살아서 우리 꼭 만나자. 할머니가 우리손녀 많이 사랑한다.
서울에서 할머니가.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이 필순씨가 손녀딸에게 쓰신 편지를 듣노라니 갑자기 제가 어렸을 때 북한에 본 선선화 포스터 생각이 나네요.
남과 북으로 갈라진 혈육들이 그 자식들에게 손자, 손녀가 태어났는지조차 알 수 없는 분단의 아픔을 끝장내자, 이런 내용의 포스터였습니다. 아, 그런데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조금도 없고 분단의 아픔은 지금도 진행형이니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젠 분단으로 더 이상 가족, 혈육들이 그만 아파하고 그들이 흘리는 눈물도 여기서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날이 오면 이필순씨도 사랑하는 손녀와 만나실 수 있겠죠.
그럼 오늘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입력 : 2019-02-15 (조회 : 310)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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