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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내 마음대로 떠나는 자유여행 : 유럽편 (9) 종교개혁의 성지, 비텐베르크

방송일 : 2019-01-15  |  진행 :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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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삶의 터전을 떠나, 넓고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 내딛어 보는 시간.
그 곳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꿈과 희망이 있고, 또 설렘이 있습니다.
오직 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즐거움으로 청취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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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내 맘대로 떠나는 자유 여행’의 새로운 이야기꾼, 조선개혁방송의 김소라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여러분을 모시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보려고 해요. 자, 여러분은 이제부터 눈을 감고, 제가 하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잘 상상하면서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준비 되셨죠?
지난 시간, 여러분은 제1대 이야기꾼이었던 장은광씨와 함께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오셨죠. 오늘 제가 소개할 곳은 독일의 동남쪽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입니다. 비텐베르크는 <루터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곳인데요, 이 루터라는 사람은 세계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아주 유명한 사람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껜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겠지만요.
마틴 루터. 그는 기독교 역사의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던 <종교개혁>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1517년, 루터는 당시 부패했던 로마 카톨릭교에 대항하여, 종교인들의 잘못을 하나 하나 비판한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의 대 교회 철문에 붙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시작이었고, 오늘날까지 독일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을 종교개혁 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죠.
저는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에 2015년 여름에 한 번, 그리고 2017년 가을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가 볼 수 있었어요.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복 받은 거죠. 특히 작년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독일 전역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행사를 펼치고 있었답니다.
여기서 잠깐.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되었다는 것은 이미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죠? 독일의 동쪽과 서쪽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자유주의 진영의 서독 지역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은 아주 발전한 신도시의 느낌이라면,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산주의 진영이었던 동독 지역은 아직도 여전히 철의 장막이 느껴지는 듯했답니다. 비텐베르크도 동독 지역에 속해 있는데요, 도시 자체가 역사 교과서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15년에 왔을 땐 교회에서 단체로 왔기 때문에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데요. 2년 후에 다시 이 곳을 찾았을 땐 저 혼자 온 덕분에 이 곳 저 곳을 아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어요. 당시 저는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에서부터 이 곳으로 오게 된 여정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베를린에는 <베를린 중앙역>이라고 하는, 아주 큰 기차역이 있습니다. 유럽은 철도가 무척 발달한 데다 EU협정으로 인해 나라 간 국경이 사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기차로 유럽 내 어느 곳이나 갈 수 있죠. 특히 이 베를린 중앙역은 유럽 교통의 중심지로서 하루에 수백 수천 편의 기차가 지나는 곳입니다. 저는 여기서 일반 지역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정도 떨어져 있는 비텐베르크로 향했습니다. DB BAHN이라고 하는 독일의 기차 예약 시스템을 통해 미리 사둔 표를 가지고 고급 좌석에 앉았어요. 고급 좌석은 다른 좌석보다 간격이 조금 더 넓고, 2층이라 풍경이 좋은 편인데요, 다행히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출발하면 곧 검표원이 와서 표를 검사하는데, 제 옆에 있던 여행객 무리들은 일반 좌석을 사 놓고 고급 좌석에 앉아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려 쫓겨나기도 했어요. 어딜 가나 비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있는가 봅니다.
기차가 점점 남쪽을 향해 감에 따라, 바깥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화려한 수도 베를린을 뒤로 하고, 논밭을 지나 약 한 시간 후 비텐베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역에 내리자마자 루터의 초상화가 이곳저곳에 걸려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서도 온통 종교개혁과 관련된 물건들을 팔고 있었어요. 여기가 바로 독일어로 루터슈타트, 즉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입니다!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도 설레는 마음은 여전했어요.
역에서 도시 중심부까지는 그리 멀지 않지만, 독일의 늦가을은 흐리고 쌀쌀하기 때문에 택시를 탔어요. 독일 물가는 비싼 편이 아닌데, 택시 요금은 정말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비쌉니다. 5분 정도 탔는데 거의 10유로, 그러니까 11달러 정도 요금이 나왔어요.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것은, 독일은 자동차가 유명하잖아요. 남조선에서는 타볼 기회조차 없었던 고급 차종인 벤츠, BMW, 볼보 등이 택시로 사용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비록 비싼 돈을 내야 했지만 독일에서만 부릴 수 있는 사치로 생각하며 기분 좋게 탔어요.
택시는 도시 중심에 있는 루터하우스에 멈췄습니다. <루터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루터와 종교개혁에 관련된 많은 것을 전시해 둔 일종의 기념관인데요, 저는 8유로, 약 9달러 정도의 비싼 입장료를 내고 루터하우스에 들어갔습니다. 건물 외관은 무척 오래됐는데, 내부는 새로 단장을 했는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루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받은 사람은 또 누구인지, 종교개혁의 결과는 어떠한지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종교개혁>에 대해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릴게요. 유럽 사회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문화와 정치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사실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 카톨릭교를 뜻하는데요, 루터가 살던 1500년대의 카톨릭교는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버린 상태였습니다. 교황과 신부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고, 오로지 크고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지어 세상에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로 마음먹은 카톨릭교 지도부는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면죄부>, 즉 죄를 용서해주는 일종의 증서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면죄부를 사서 동전이 돈 통에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구원을 받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독일의 루터를 비롯한 그의 친구 멜랑히톤, 스위스의 칼빈과 쯔빙글리, 체코의 얀 후스 등은 이러한 종교 타락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다섯 개의 구호를 만들어 외치며, 진정한 의미의 종교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다섯 개의 구호는 라틴어인데요.  Sola Scriptura - 오직 성경 말씀으로, Sola Gratia -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Sola Fide - 오직 믿음으로, Sola Christus -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Solo Deo Gloria -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라는 뜻입니다. 이 종교개혁을 통해 지금의 기독교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가 구분되어집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저항하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당시 종교 개혁가들의 태도와 자세를 엿볼 수 있죠. 약 2천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던 종교개혁이, 바로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비텐베르크에서 시작되었다 생각하니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루터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 한 10분 정도 도시 위쪽으로 걸어가면 드디어 그 유명한 비텐베르크 교회가 나옵니다. 저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수십 수백 개의 성당과 교회 건물을 봤는데요, 비텐베르크 교회는 크기가 그렇게 큰 것도, 눈에 띄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지만 역사적 사실 때문인지 이 교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비텐베르크 교회 앞에 가면 후대들이 루터를 기념하여 루터가 작성하여 붙였던 <95개조 반박문>을 동판으로 새겨 두었는데요. 이 95개조 반박문은 교황청의 타락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조목조목 밝히는 것으로서, 당시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교황에게 정면 도전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철문 앞에 서자 500년 전, 타는 듯한 절박함으로 부르짖는 루터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제 마음도 뜨거워졌어요. 실제 이 사건으로 루터는 파면당할 뿐만 아니라 교황청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포기하지 않았던 루터였습니다.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비텐베르크 교회, 그리고 루터가 30년 동안 섬겼다는 시립 교회를 찬찬히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독일 태생의 세계적 위인은 무척 많습니다. 철학자 칸트, 헤겔, 청취자 여러분께도 너무 익숙한 칼 마르크스, 소설가 괴테, 음악가 베토벤, 과학자 아인슈타인 등등. 그런데 참 독특한 것은, 독일인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조사에서 독일 유명 인사 중 세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독일 인물로 루터를 꼽았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인들은 종교인 루터를 어느 누구보다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인데요, 과연 무엇때문일까요.
당시 로마 카톨릭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카톨릭의 수장 교황은 북조선의 김일성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교황에게 반기를 들고, 그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비판하였던 루터의 용기는  기독교뿐 아니라 인류 역사를 180도 바꿔 놓았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는 있지만 결코 아무나 실천할 수 없었던 독보적 개혁 정신을 독일 국민들은 사랑한 것 같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향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인데요. 물론 루터의 개혁이 작은 사건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 개인이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결과가 세계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비텐베르크에서 만나본 루터의 삶이, 청취자 여러분에게 큰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제 저는 다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돌아갑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루터처럼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담고요. 루터를 기념하여 만든 아기자기한 인형들과 교회 모형도 사고, <95개조 반박문>을 라틴어로 적어 벽보처럼 만든 두루마리도 하나 샀어요. 집에 돌아가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볼 때마다 루터의 정신을 생각하기 위해서요.
자, 오늘 저와 함께 한 여행은 어떠셨나요. 다음 시간에는 통일의 성지, 베를린에서 만나도록 해요. 우리가 직접 만나 대화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많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나눌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입력 : 2019-01-15 (조회 : 114)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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