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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여행

7회 음악의 어머니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편 (1)

방송일 : 2018-07-10  |  진행 : 경덕현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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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의 아들에서 태어나 법과대학으로 가기까지 ”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작곡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 그의 인생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시간부터는 그와 동시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고, 다른 음악적 성격을 지닌 작곡가, 독일인으로 태어났지만, 영국인으로 국적을 바꾸었으며, 지금도 그를 자랑스런 영국인, 독일인으로 일컫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남조선 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며,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사람이 16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서양음악을 일컫는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초창기에 크게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헨델은 1685년 독일의 한도시 할레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을 언제나 옆에 끼고 살았던 바흐와는 달리 헨델의 집안은 음악가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작센 궁정 외과의사 겸 이발사였습니다.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그의 부모님은 헨델을 법관으로 키우고 싶어했습니다.
헨델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의 나이는 무려 63세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자녀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저 멀리 독일에서도 마찬가지 였나봅니다.
한편 헨델이 11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일찍 세상과 작별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실제로 할레대학 법과대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세가 되던해 그는 학업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법을 공부하고 법률가가 되어 사는 삶보다는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청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그는 어린시절부터 오르간을 배웠으며,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들어간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면서도 교회 오르간연주를 연습하는 견습생으로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년시절 내내  현실과 음악 사이에 놓여져 있었던 헨델은 그의 터전을 옮기고 나서야 파란만장한 음악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음악을 해서 무엇을 먹고 사려고 하냐고 외친 아버지에게 헨델은 이제 그의 음악으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자 했던 것이죠. 음악에 대한 열정을 켤코 포기하지 않고, 익숙한 그의 고향땅 할레를 떠나 독일북부 최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습니다. 18세가 되던 1703년 그는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직장을 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법률 공부를 그만두자마자 곧이어 음악극장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직업을 옮겼다는 것은 꽤 오랫동안 악기를 연주하는데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이름이 독일에서 이탈리아, 영국까지, 전 유럽에 퍼지는 날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을 들어보겠습니다.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는 오라토리오 성악곡  ‘메시아’  제2부에 나오는 할렐루야입니다.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이 음악을 들으시며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상 조선개혁방송의 경덕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 2018-07-10 (조회 : 160)  |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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