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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혁개방위원회》의 “빨간책” 전문-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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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제목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백두산혈통》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내부 제목 : 김정은은 왜 백두산혈통을 숙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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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가 좌천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숙청됐다. 절반은 일본 후지산혈통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북조선 최고의 백두산 혈통인 최룡해를 숙청한 것이다. 최룡해까지 숙청됨으로써 이제 진짜배기 백두산혈통은 조선의 정치권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최룡해가 아직까지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따라다니고 있지만 20143월까지의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가 아닌 살아도 죽은 목숨인 인간 최룡해라는 껍데기일 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최룡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최룡해가 왜 총정치국장 자리에서 물러났을까 하는 생각이 없어질 때 쯤 되면 장성택이나 리영호처럼 완전히 숙청돼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20126월 리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 숙청되고 지난해 12월 장성택 로동당 행정부장이 숙청될때만 해도 최룡해는 영원히 김정은 옆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될 것처럼 보였다.

최룡해야말로 최고중의 최고 백두산 혈통으로 북조선의 사상과 력사, 리념의 정통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은 김일성만큼 유명한 항일투사였고 김일성 가문과 가장 친했고 또 아끼고 귀중히 여기던 가문이었다. 때문에 20091월 김정은이 김정일 후계자가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최현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의 전형으로 내세워졌다.

최현은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가 조선의 최고 지도자로 된 몇 달 후인 201248일자 로동신문에 최현동지는 정말 자기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몸에 깊이 배인 사람이였습니다라는 김일성 주석의 말씀을 제목으로 한 글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충성의 전형이였다. 그리고 2013129일 장성택 로동당 행정부장을 제거했다고 보도하던 시점부터 4월까지도 로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텔레비죤은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에 대해서 수령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혁명가의 전형으로 내세웠었다. 20141214일 로동신문은 우리는 김정은동지밖에 모른다!”라는 정론에서 누가 감히 우리 수령님을, 어제날 종파나부랭이들의 숨통에 권총을 들이대고 불을 토했던 투사들의 웨침소리는 결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최현의 충성심을 강조했다.

그랬던 최현의 아들, 김정은이 가장 믿고 신뢰하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왜 숙청됐는가?

그것은 바로 네가(김정은) 권력을 절대화, 신격화하려면 네 곁에 백두산줄기를 가까이 두지마라. 진짜 백두산 혈통이 네 곁에 있으면 후지산 줄기인 네가 눌리워서 권력을 잃게 될 것이다.”고 말한 아버지 김정일 유언 때문이다.

지난 5월 남조선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최룡해가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서 해임된 것은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에게 군대의 실태에 대해 솔직하게 보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여러 소문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최룡해를 숙청하기 위한 구실일뿐 진짜 리유는 바로 최룡해가 살아있는 북조선 최고의 백두산 혈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리유는 최룡해 총정치국장 자리에 후지산 줄기의 곁가지인 황병서 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총정치국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황병서는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의 친척으로 2002년 군대 내에서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이라고 내세우는 우상화 사업을 담당했었다. 그후 2004년 고영희가 사망한 이듬해인 2005년부터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따라다니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조선 최고의 백두산 혈통, 반일투쟁, 항일투쟁의 선구자인 최현의 아들 최룡해를 숙청하고 그 자리를 후지산 줄기인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의 친척인 황병서가 차지했다는 것은 후지산 혈통이 백두산 혈통을 숙청하고 조선의 절대권력을 장악했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왜 김정일은 백두산 혈통을 가까이에 두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지, 그리고 김정은은 굳이 백두산 혈통을 숙청하고 후지산 줄기를 내세워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깊이있고 구체적으로 파헤쳐 본다.

김정은의 백두산혈통 숙청의 진실을 알게되면 김정은의 권력이 얼마나 빨리 붕괴될지, 또 김정은 이후의 조선은 어떤 국가가 될 것이며 인민생활은 얼마나 변화하고 통일은 언제 될 것인지 등 조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간부들의 도움과 극비밀리에 조선을 탈출해 중국에서 보호받고 있거나 남조선에서 살고 있는 전 북조선 간부들의 증언을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1. “재수없는 젊은 대장김정은 등장

 

2010928, 조선중앙텔레비죤을 보던 북조선 인민들은 물론이고 평양의 각급 중앙기관 간부들과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의 고위급 간부들은 깜짝 놀랐다. 이틀간에 걸친 충격이였다. 김일성을 닮은 젊은 후계자 김정은이 회의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말로만 샛별대장, 청년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김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국가안전보위부장을 맡았다는 등의 소문만 듣다가 얼굴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얼굴이 김일성을 닮았고 너무나도 어리다는 것도 간부들과 군관들이 놀란 리유였다.

김정은은 1982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2년 뒤인 198418일생으로 김일성, 김정일 정주년인 2년에 맞추었기 때문이다. 26살이라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를 많게 보이기 위해서 또 인민들이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김일성을 닮도록 하기 위해 여섯차례에 걸쳐 성형수술도 하고 평범한 몸매였던 몸을 속성으로 살을 찌웠지만 앳된 젊음은 감출수 없었다.

김정은의 얼굴 공개는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였다. 당대표자회 하루 전인 2010927일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통해 김경희, 김정은, 최룡해, 현영철, 최부일, 김경옥에게 대장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열린 로동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얼굴을 공개했던 것이다.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대장의 군사칭호를 수여받자 당장에 조선인민군 전체가 술렁거렸다. 고급군관들은 물론이고 좌급 군관들까지도 김정은이 너무나도 젊었고 군사복무 경력이 전혀 없는데도 대장의 군사칭호를 주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장성택까지 대장의 군사칭호를 수여한 것이 군관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당시 군관들은 술자리에 앉으면 비유법을 쓰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소심한 사람들은 아 참 재수없어서... 요즘은 왜 이리 술맛이 없어라며 은근히 불만을 표시했고 담이 큰 사람들은 속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앉으면 , 이 별을 달기 위해서 고생한 생각을 하면 참으로 인생이 허무하다. 누구는 언땅에 배 한번 붙여보지 않고도 대장이 되는데” “치마 둘러도 백두산 줄기면 할머니도 대장되는데 뭘 그래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김정일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었다. 중풍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에게 권력을 제대로 넘겨주어야만 했다. 자신이 죽은 후에 평가는 물론이고 자식들의 앞날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김정일은 후계자를 빨리 내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자신이 1970년대부터 후계자를 하면서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만들었고 결국에는 사망하게 만들었던 것을 알기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랬던 김정일도 2006년부터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자 2007년부터 후계자를 내세우는 문제를 조급하게 서두르기 시작했다.

일본 초밥을 만들 재료와 앙꼬모찌’(찹쌀떡)을 사기 위해 일본에 비행기까지 띄울 정도로 호화사치를 누리고 기쁨조를 두고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였던 김정일은 당뇨병과 심장병, 고혈압 등 여러 만성질병이 있었다. 65세가 되던 2006년 김정일은 제대로 걷지 못하고 부관이 의자를 들고 다닐 정도였고 20075월에는 독일 의사를 불러 심장에 핏줄을 확장하는 수술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정일은 후계자를 정해야 할때가 되였음을 절감하고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울 준비를 시작했다.

18세때부터 고운 처녀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내각 상의 집을 빌려 바람을 피울 정도였던 김정일은 수많은 여자들과 동거했고 그 중에서 네명의 여성에게서 자식을 보았다. 첫 번째 여성인 홍일천에게서는 1968년에 딸을, 두 번째 여성인 리기영의 며느리였던 성혜림과의 사이에서는 맏아들 김정남을, 여자관계를 몰랐던 김일성의 요구에 따라 공식 결혼한 김영숙에게서는 1974년 딸 김설송을, 그리고 1976년부터 련애를 했던 고영희에게서는 둘째아들 김정철과 셋째아들 김정운(훗날 김정은으로 고침)과 딸 김여정을 낳았다. 김정일이 한창 젊었던 1970년대 중반에는 성혜림과 고영희, 김영숙 세 여자와 동시에 즐기면서 자식을 놓을 정도였고 조선의 최고미인였던 우인희, 홍영희를 비롯해 조선의 이름난 미인들은 김정일과 관계를 해보지 않은 여자가 없을 정도로 김정일은 여자를 좋아했다.

맏아들 김정남은 1980년대부터 1991년까지 11년간 해외류학을 다녀왔으며 고난의 행군시기 개혁개방을 주장하다 김정일에게 버림받아 중국으로 나갔다. 이 과정에는 1978년부터 김정일의 실질적 정부인 역할을 했던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의 은밀한 공작도 김정남을 중국으로 쫓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욕심과 질투심이 많았는데 강동초대소에서 형과 놀다 다투게 되자 형 김정철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 피를 흘리게 했을 정도로 심성이 모질었다. 10살도 안된 김정은이 강동이나 창성, 원산 초대소에 김정일을 만나려 온 군대의 장령들에게 발길질을 해댄 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이러한 심성은 김정은이 유난히 좋아했던 롱구경기를 할때에도 나타났는데 형이 속한 롱구팀에게 지면 참지 못하고 선수들을 못살게 굴었다. 김정은은 2003년에도 청진 공군부대에서 아버지 김정일과 어머니 고영희가 보는 앞에서 롱구경기를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롱구공을 차버리고 경기장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정은의 바로 이런 심성을 무척 좋아했다. 김정일은 1980년대부터 11년간 자신의 요리사를 했던 일본인 후지모도 겐지에게 정철이는 (마음이) 여자 같아서 안돼. 정운이가 나를 완전히 닮았어. 내 뒤를 이을 아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포악함과 집요함, 강한 질투심 등을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의 첫 번째 자질로 본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런 심성은 절대권력을 가진 아버지의 그늘밑에서는 장점이였지만 다른 사람들과 생활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김정은은 16살때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유학해서 공부했지만 성적은 낙제를 면할 정도였고 독일어를 제대로 못해 한학년 유급하기도 했으며 동창들에게는 조용하고 변덕스러운 학생으로 통했다. 그러다가 9학년이던 2000년말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는데 그 리유는 김정남이 해외류학을 다녀와서 개혁개방을 주장한 것처럼 김정은도 나쁜 물을 먹을까봐였다. 귀국한 김정은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교원들을 집에 불러 수업을 받고 대학을 졸업했다. 학습제강이나 강연회 등 김정은 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등에서는 김정은이 16개월동안 군사복무를 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샛빨간 거짓말로 집에서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수업을 받던 시기에 군사복무를 한 것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장령급 군관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진실이 한입두입 퍼져나갔기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군사복무를 하루도 해보지 못한 김정은이 친고모인 김경희와 장성택 등과 함께 대장의 군사칭호를 받자 진짜로 재수없다!”는 말이 군관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김정은이 북조선 인민들에게 얼마나 재수없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2009121일 전격적으로 실시된 화페교환에서 알 수 있다. 1992년 화페교환 이후 김정일은 몇차례에 걸쳐 화페교환을 하려 했으나 후과 때문에 못했다. 2009년 초여름까지만 해도 내각이나 당에서는 화페교환 계획이 없었는데 김정은 자신의 후계자 활동자금 마련을 위해 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단기간에 전격적으로 실행했다. 2009년의 화페교환의 결과는 당시에 피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자살까지 해야만 했던 북조선인민들이 겪은 처참함 그 자체이다.

 

- 다음에 계속 -

입력 : 20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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