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체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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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희씨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하는 남편에게

방송일
2020-09-29
진행
시간

파랑새 체신소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슴에 한으로만 남은 실향민, 탈북인들의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북녘으로 전해 드립니다.
손 내밀면 지척인데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가슴 아픈 북한으로 뜨거운 눈물과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그 들의 사연을 신청자 본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드립니다


<살아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보고 싶은 정실이 아버지에게>

정실이 아버지, 다시는 올 수 없는 그 멀고 험한 길 혼자 가서 지금은 어쩌고  있는지요? 당신과 나는 20대에 부부로 만나 딸 둘, 아들 하나 낳고 재미나게 살았어요. 적어도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하기 전 까 지는요.
둘 다 평안도가 고향이었지만 한 생 군관으로 살던 당신이 마지막으로 배치 된 곳은 이름도 생소하고 엄청 추운 북쪽지방의 국경지역이었어요.
당신은 군인으로 복무하면서도 광산에서는 대형차를 운전하고 그 대가로 주는 돈까지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하던 때도 있었지요.
정실이 아버지, 고지식하고 착했던 우리 부부의 일생에서 아들딸 다 건강하고 밥 굶지 않고 살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제일로 행복했던 것 같아요.
군관이었던 당신을 만나 평안도로, 황해도로 함경도로... 참 이사는 얼마나 많이 다녔어요. 그 당시 우리 집엔 좋은 것 보다 든든하고 깨어지지 않을 물건만 많았고 덕분에 태어난 고향보다 이사 간 지역 문화에 빨리 적응했어요. 산 설고 물 선 곳으로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그래도 당신이 있어 두려운 게 없었고 내 자식들과 함께 라서 늘 행복했어요.
여보,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살던 지방은 춥기는 얼마나 춥던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태어난 우리에게는 그 게 제일 힘들었던 생각이 나요.
하지만 그 건 배고픈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당신과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나라에서 주던 배급이 끊기고 월급마저 안 주자 나는 할 줄도 모르는 장사에 뛰어들었고 장사 밑천 한 푼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어요.
여행증도 차표도 없는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장사가 고무산에서 시멘트를 날라다 파는 거였는데 그 것도 돈이 없어 땅에 흘려진 걸 그러모아 기차로 날라 오는 거였어요.
정실이 아버지, 말이 시멘트지 그게 사실은 돌가루라 한 보따리가 얼마나 무겁던지, 별다른 운반수단도 없던 나는 그걸 머리에 이어서 역전으로, 기차로, 집으로 시장으로 나르노라 머리카락마저 다 빠져버렸어요. 그렇게 몇 년 사이에 나는 키도 줄고 폭삭 할머니가 되어 버렸어요.
열차안전원들이 짐을 빼앗고 인간이하의 멸시를 해도 열차 발판 에라고 앉아 집으로 가는 날은 그래도 행복했어요. 이걸 가져다 팔아 우리 식구 죽이라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여보, 매일 눈만 뜨면 그러고 미친 듯이 사노라 나는 당신이 얼마나 배가 고픈지, 얼마나 많이 아픈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평생 군 생활을 하면서 배고픈 걸 모르고 살던 당신에게 하루 한 두 끼 죽밖에 드릴 수 없었던 내가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여보, 당신과 나는 거지처럼 살면서도 그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고 바보같이 생각했지만 배고픔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우리 딸들은 우리에게 말도 안 하고 중국으로 탈출을 했어요.
정실이 아버지, 설상가상으로 장사를 한다고 평안도 쪽에 있는 친척집으로 갔다가 온 날, 연탄가스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잃어버렸잖아요. 세상이 너무 허무하고 원망과 저주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게다가 극도로 영양이 약해지자 당신은 병까지 들어 집을 나갔고 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유랑걸식자가 되어버렸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50살이 될 때까지 한 생을 군복을 입고 멋지게 살던 사람이 고작 밥이 없어 건강도, 정신 줄도 다 버린 폐인이 되어 전국의 시장으로 역전으로 방황하며 남의 음식을 채서 먹고 매를 맞고 옷을 빼앗기며 산 걸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에 피눈물이 납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지만 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딸들마저 중국으로 가 소식조차 모르지, 당신을 살뜰하게 돌볼 정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엄마까지 그렇게 한집에 모여 살던 우리 여섯 식구는 한 순간에 이산가족이 되어버리고 나는 당신은 어느 하늘아래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조차 아직도 몰라요.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세상이 원망스러웠을까, 우리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요.
그 생각을 하면 하루 세끼 먹는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따스한 방에서 편히 잠들 수가 없어요. 미안 하고 미안 하고 또 미안해요.
여보, 한 생 배급을 받고 그런 대로 죽을 때까지 살 줄 알았는데 나도 40대 중반에 암 수술을 받았고 당신도 뇌 혈전이 와 둘 다 몸도 성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실이 아버지, 2007년에 큰딸이, 2000년도에 둘째가 중국으로 팔려 간 후 10년 만에 딸에게서 소식이 왔어요. 북한에 더는 미련이 없었고 더군다나 자식들과 떨어져 살 수 없어 결국 나도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답니다.
나는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둘째 딸을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북송이 되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모르면서요. 불행한 일은 왜 우리 가정에만 계속 오는지?
여보, 불행 중 다행인지 하나님이 보살펴주신 건지 우리 둘째가 노동단련 대에 들어갔다가 다시 탈출하는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배고픈 걱정이 없는 중국이라고 해도 늘 감시와 체포의 공포 속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어요.
정실이 아버지, 중국에서 내가 큰딸과 함께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둘째가 언니 전화번호를 알고 내가 살던 곳으로 찾아왔더라고요. 그렇게 세 모녀가 그 넓은 중국 땅에서 영화처럼, 소설처럼 눈물로 다시 만났어요.
그런 행복도 잠시였어요. 제가 다시 둘째와 살기로 하고 그 곳으로 같이 갔지만 중국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아니었어요.
여보, 놀라지 말아요. 지금 나는 두 딸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왔어요. 그리고 고맙게도 세 모녀가 다 같은 지역에서 열심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배고픈 걱정, 추운 걱정 모르고 딸들과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기도 합니다. 배고픈 걱정 모르는 나라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더 맛있는 걸 먹으려고 차를 타고 심지어 기차도 타고 일부러 먼 곳으로 다니더라고요. 외국으로 여행은 옆집 다니듯 하고요.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당신 자리 하나는 늘 비어 있고 그 런 자리를 당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파요.
여보, 나는 한국에서도 늘 웃으며 씩씩하게 살고 있어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버려진 종이 한 조각이라도 재활용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은 우리 가족 걱정은 전혀 마시고 어느 하늘아래에 있든 편하게, 그리고 그 세상에서는 부디 배고픈 걱정을 절대로 하지 말고 세 끼 잘 챙겨 드세요. 이 게 나와 두 딸의 간절한 바람이에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너무 많은데 한 장의 편지에는 다 담을 수 없네요. 저 하늘에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권순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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