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체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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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옥씨가 내 딸 선희에게

방송일
2020-06-09
진행
시간

파랑새 체신소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슴에 한으로만 남은 실향민, 탈북인들의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북녘으로 전해 드립니다.
손 내밀면 지척인데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가슴 아픈 북한으로 뜨거운 눈물과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그 들의 사연을 신청자 본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드립니다


<내 딸 선희에게>

내 딸 선희야, 아, ... 이름만 불렀는데도 엄마의 가슴이 먹먹하고 다음 말을 도저히 이을 수가 없구나.
그 동안 잘 있는지?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생사도 모르는 딸이지만 행여나, 중국이던 어디든지 이 세상에 살아만 있다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써 본다.
선희야, 우리가 헤어진지도 이제 20년도 훌쩍 넘었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하던데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하고도 남았을 너무도 긴 세월이다.
눈 감으면 내 눈에는 20년 전 어리고 이쁜 네 모습만 떠오르는데 눈을 뜨고 거울을 보면 너무나 늙어버려 할머니가 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구나.
너는 부귀영화를 바란 것도 아니고 그저 자그마한 배를 채우고 싶어 어미 곁을 떠났는데 그 게 그렇게 너와 나의 영 이별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이렇게 늙은이로 변하는 사이 너도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테고 한 가정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내 딸 선희야, 이 기나긴 세월을 엄마는 눈만 뜨면 어디선가 내 딸 소식이 들려 올 것만 같아 20년이 넘는 세월을 하루처럼 살아 왔다,
이제는 지워야지, 조금씩 내 마음에서 지워야지, 하는데 지워지는 것이 아니고 너에 대한 생각은 나의 모든 기억은 네가 중국으로 가던 그 때까지에서 전부 멈추어 버렸고 가슴에 쌓인 이 모든 한을 한시라도 떨쳐버리고 싶은데 세월이 갈수록 가슴속으로 자꾸만 더 엄마 가슴을 왜 이렇게 더욱 더 파고드는지 모르겠구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엄마는 전혀 모르고 있는데... 선희야, 엄마 가슴이 너무나 괴롭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아프구나.
선희야, 너는 착하고 이쁜 딸로 내 자식으로 태어나 준 것 만으로도 나에겐 선물이었고 기쁨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쁘고 재간도 많아 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못하는 게 없던 내 보배 같은 내 딸아,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엄마의 가슴에 새겨 넣은 듯이 생생하다.
어려서부터 너는 남달리 당돌하고 심지어 남자애들 앞에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오히려 대장 노릇을 하곤 했었지.
학교에 가면 공부도 늘 5등 권 내였고 글을 쓰는 솜씨도 남달라 축전 문 같은 건 네가 도맡아 쓰던 생각이 난다. 게다가 잘 나가는 애들은 왜 그리도 모든 걸 다 가졌는지 너는 얼굴도 다른 집 애들보다 엄청 예뻤고 음악선생님이랑 기악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곤 했단다.
내 딸 선희야, 너도 오빠 생각이 나지? 네 오빠도 남달리 인물도 좋고 학교에서 축구를 잘 해 학교에 다니는 전 기간 축구선수로 활동을 하지 않았니.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너는 이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선희야, 너도 물론 알고 있지만 네 아버지는 철도공장에 다니셨고 그리고 엄마는 청진항 정양소에서 일했어.
우리 집은 너무나 평범한 가정이었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이었어.
그 소박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던 가정이 왜 이렇게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고 살길을 찾아 떠나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천지로 흩어져 버렸는지?
악몽 같은 일들은 왜 나에게만 그렇게도 많이 닥쳤는지, 나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악몽들을 내 머리 속에서 말끔히 지워 버리고 싶다.
돈을 벌어다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며 날 바다로 나갔던 네 오빠가 바다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던 날, 나는 이 세상이 그 대로 멈추는 줄 알았다.
날 벼락을 맞았다는 말이 꼭 맞는 말이었다.
내 딸 선희야, 그 일이 있은 후 후 네가 중국으로 갔으니 너는 이 방송을 들으면 아, 이건 우리 엄마다, 하고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선희야, 네가 중국으로 떠나던 날, 이모하고 한 약속을 잊은 건 아니겠지? 그 넓은 중국에서 우리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약속을 말이다.
살아 있으면 북경 역에서 네 생일 날 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려서라도  꼭 만나자는 약속, 첫 해에 못 만나면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그 약속을 지키자고 했잖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엄마는 해마다 네 생일 날 이 오면 꼭 북경 역에 갔었다. 한 해도 아니고 10년을 말이다. ...
사랑하는 내 딸 선희야, 엄마는 지금 대한민국에 와 있다.
기 막히게 잘 사는 부자도 아니고 풍족한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불만스럽지 않아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에미가 매일 행복이 넘친다고 하면 그 건 맞는 말이 아니지.
중국이 아무리 땅이 넓고 네가 아무리 풍족하게 산다고 해도 차마 엄마생각까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닐 거라고 본다. 네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면 분명 그 약속을 지켰을 것이니까.
혹시 네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 두만강에서 잘 못 된 건 아닐까, 중국에서 나쁜 사람을 만나지나 않았을까, 불길한 예감이 항상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구나.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혹시 네가 중국에도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엄마는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아니라고, 내 딸에겐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굳게 믿어본단다.
내 딸 선희야, 정말 네가 엄마에게로 오지 못할 엄마도 모르는  사정이 있는지, 아니면 영 영 오지 못할 곳에서 살고 있는지? 사무치게 그립고 너무 너무 보고 싶다.
엄마는 지금 홀로 살고 있지만 너와 같이 떠나지 못한 걸 매일 후회하고 원망하면서 오직 너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며 이렇게 살고 있구나.
선희야, 사랑스러운 내 딸, 예쁜 내 딸 선희야, 그 곳이 어디든 좋다. 나는 내 딸이 꼭 살아 있을 거라고 믿어.
설사 엄마가 너를 만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내 딸은 꼭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알았지?
너를 기다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꼭 너에게 전해져 네가 엄마를 반드시 찾아  오길 바란다. 내 딸아 엄마를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어라.
자나 깨나 꼭 다시 만나길 간절히, 간절히 기대하며 엄마로부터

입력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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