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체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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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수씨가 보고싶은 이모에게

방송일
2020-09-22
진행
시간


파랑새 체신소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슴에 한으로만 남은 실향민, 탈북인들의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북녘으로 전해 드립니다.
손 내밀면 지척인데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가슴 아픈 북한으로 뜨거운 눈물과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그 들의 사연을 신청자 본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드립니다

<파랑새 체신소 >인사말

진행자: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안녕하세요?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입니다.
 오늘 제가 만난 분은 대한민국에서 대학공부를 마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신 젊은 분인데요, 우선 소개 먼저 부탁합니다.

신청자: 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차정수입니다.
 
진행자: 네, 안녕하세요?
 말씨를 보아선  한국에 오신지 꽤 되는 것 같은데요?

신청자: 네, 저는 북한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고요. 이제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생활은 더 없이 만족한데 북한에  우리 이모가 계시거든요. 늘 어머니 같이 저를 보살펴 주시던 우리 이 모가 그리워 이모에게 편지를 썼어요.

진행자: 아, 그러시군요.
 어머니 같은 이모, 이모에 대한 추억이 많은 가 봐요.
 
신청자: 맞아요.
 우리가족 모두가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고 추방지에서 헤매 일 때 우리  이모는 저를 어머니 보다 더 살뜰하게 보살펴 주셨어요.
 이모님이 항상 고마웠지만 인사한 번 전 한 적이 없고 어떻게 도와
 드릴 방법도 없어 항상 가슴이 아파요. 

진행자: 네~ 그 고마운 이모와 정수씨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 편지
 사연을 전해 주세요.

신청자: 네~

보고 싶은 이모에게

이모,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제가 이모에게 인사한마디 못 하고 갑자기 고향을 떠 난지도 벌써 5년이 되었어요. 그 동안 저희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으셨는지요?
이모부랑 그리고 사촌 형제들, 다 무사 하겠죠?
북한을 떠 올리면 좋은 추억은 별로 없고 다 나빴던 기억 밖에 없지만 전 지금도 그 곳엔 이모님이랑 삼촌들이 살고 계시기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나 저의 식구들이 태어난 고향이기에 언제나 마음속에 잊은 적이  없는 곳 이예요.
더욱이 저의 어머니가 중국에 갔다가 잡혀 나와 우리 집이 시련을 겪을 때, 이모님이나 외삼촌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오늘 저의 가정은 없었을 거예요.
이모, 그때 이모님도 살기 어려웠지만 우리 어머니를 빼 내 주시려고 많은 돈을 쓰셨지요? 그 돈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우리 어머니는 교화소에 가셨을 것이고 살아서 나오지도 못 했을 겁니다.
이모, 그렇지만 오늘 우리 식구들은 한국에 와서 나와 엄마, 동생이 다 함께 마음껏 대학공부하고 먹고 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저의 어머니와 저는 대학을 이미 졸업했고 제 동생도 이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우리들이 잘 먹지 않는다고 야단이시고 추운 겨울이라고 해도 추운 걱정을 모르고 살아요. 먹는 걱정보다 땔감걱정이 더 많았던 북한 생각을 하면 따뜻한 겨울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남한의 집들은 난방이 잘 되어서 겨울이 되어도 북한처럼 땔 걱정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이제는 남한 애들이랑 잘 어울려 웃고 떠드는 천 상 남한 사람이 다 되었어요, 제 동생 정애도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멋 부리기를 즐기는 이쁘고 착한 처녀가 되었어요.
이모님, 돌이켜 보면 우리 식구들은 오늘 남한에서 누리는 이 행복이 그저 꿈만 같아요.
북한에서 우리 엄마 때문에 온 가족이 심심산골로 추방을 당해서 살던 생각은 제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기차역도 없고 심지어 버스도 안 다니는 심심산골, 저는 태어나서 그 런 산골을 처음 보았어요.
우리 엄마도 살려고 그랬고 나라를 배반하거나 도적질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이모님이 돈을 주셔서 교화소에 가는 걸 겨우 면하고 추방을 당해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한창 사춘기시절이던 저에게는 그 때 당한 고생과 천대, 멸시를 참으로 잊을 수 가 없어요. 아니, 어쩌면 제가 죽을 때까지 절대 잊을 수가 없고 솔직한 말로 저는 북한에 대한 생각 자체도 떠 올리기 싫어요.
이모, 그때 우리 집은 읍에서도 50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이라 학교 가는 길도 엄청 멀어진 데다가 중학교 졸업반이 다 된 저를 추방 온 애라고 학급 애들이 왕따 시키고 힘든 일은 언제나 저에게 다 시켰어요.
여기 사람들은 버스 한 정거장 사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든가 자가용으로 다니더라고요. 북한 사람들은 이 정도 거리는 옆집처럼 다니고 있으니 이모는 제 가 하는 이야기가 절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저는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사람이 아니고 추방 온 집 아이, 정치범과 같은 사람이었죠.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신분의 격차가 심한 북한에서 우리 같은 사람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으니 사람이었지 죽은 목숨이나 같았어요.
게다가 우리 집은 정치적으로 나쁜 집이라고 24시간 사람들을 시켜 감시하게 하고 그 마을에서 본래부터 살던 사람들은 우리 식구들과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이모, 그래서 제가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 함흥에 있는 이모네 집으로 도망을 갔었지요? 정말 학교 가기가 지긋지긋하게 싫었고 솔직히 말하면 전 그 당시 우리 어머니나 우리 집 자체가 다 싫었어요. ‘난 왜 이런 부모를 만나 이렇게 밖에 못 살까?’라는 생각에 부모님들도 미웠답니다.
제가 도망을 치면 학교에서는 저를 잡는다고 이모네 집에까지 찾아와 얼마나 시끄럽게 했던지 지금 생각하면 이모님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요.
추운 겨울에 땔감을 한다고 산을 헤매다가 손발이 꽁꽁 얼던 일이랑, 제발 죽을 먹어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하지 않는 곳에서 편히 살고 싶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모, 그래서 전 북한 생각을 자주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그 곳은 제가 태어난 고향이고 그 곳에는 아직 저의 혈육들이 살고 있기에 차마 미워 할 수도 없고 마음속에 늘 떠나지 않는 곳이 북한인 것 같아요.
제가 그 감시를 피해 먼저 남한에 오고 후에 어머니와 동생이 왔지만 장사를 떠나셨던 우리 아빠는 끝내 우리와 함께 오지 못했지요.
지금 우리 아빠는 어떻게 되셨는지 알 길이 없어요.
이모, 한꺼번에 온 식구가 없어지면 안 되기에 밤사이 이모에게 말도 못하고 브로커에게 이끌려 고향을 떠난 우리식구들의 마음이 어땠는지 아세요?
이 길을 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나 끔찍한 북한에서의 생활이 싫어서 가다가 죽더라도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누구나 한 번 밖에 못 사는 인생을 그렇게 버러지보다 못하게 살기 보다는 하루를 살아도 정말로 사람처럼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거든요.
이모, 저는 한국에 와서야 북한이 왜 지금까지도 그렇게 못 살 수밖에 없는 나라인지를 잘 알게 되었답니다.
이모, 좀 보세요, 이 세상에 북한보다 더 못 살던 나라들이 이제는 북한보다 더 자유롭게 더 잘 살고 있어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국민에게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주는 나라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이모, 고려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왕족국가를 세우고 국민 모두가 싫든 좋든 자기 만세만 부르라고 강요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밖에 없어요.
이모도 제 편지를 받으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이모나 외삼촌들도 다 남한에 와서 우리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저는 통일이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날 통일의 그 날은 언제일지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그 날은 꼭 올 거 에요. 그 날까지 이모님과 이모부 사촌동생들 모두 행복하세요. 다음기회에 또 소식을 전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서울에서 조카 정수 올림

<파랑새 체신소 >마지막 인사말

진행자:  네, 정수씨에게 북한은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끔찍하고 기억조차  하기 싫었던 곳일 수밖에 없는 곳이군요.
 죽을 먹고 살더라도 단 하루만이도 자유롭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게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온 정수씨 같은 분들의 마음일 겁니다.
 
신청자: 그렇죠. 북한에서 살 때는 저도 자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저는 북한에만 자유가 없다는 것, 잘 살고 못사는 차이는 있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북한보다는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걸 대한민국 에 와서야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이 자유를 버리면 한 순간도 못 살 것 같아요.
 

진행자:  맞아요. 정수씨는 어린 나이지만 그 소중함을 북한에서 직접
 겪었잖아요.
 덕분에 가족 모두가 북한에서였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대학공부도
 하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너무 행복해 보여요.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신청자: 아, 그래요? 사실 전 지금 이 현실이 만족하거든요. 더 바람이 있다면
 저는 우리 가족이 지금처럼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북한에 계시는 우리 이모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 번 드리고 싶어요.
 이모! 어려울 때 절 친자식처럼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날 대까지 꼭 건강하게 사시기 바라요~
 
진행자:  아유~ 이모님이 정수씨의 목소리를 정말 들으실 수 있다면 너무 좋아
 하실 것 같아요. 저도 정수씨 가족 분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오늘 저녁 파랑새 체신소 편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다려 주세요. 지금까지 파랑새 체신소의 김정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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