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체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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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옥씨가 잊을 수 없는 언니에게

방송일
2020-06-16
진행
시간


파랑새 체신소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슴에 한으로만 남은 실향민, 탈북인들의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북녘으로 전해 드립니다.
손 내밀면 지척인데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더 가슴 아픈 북한으로 뜨거운 눈물과 그리움을 담아 전하는 그 들의 사연을 신청자 본인들의 목소리로 직접 전해드립니다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사랑하는 언니에게>

언니,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불러만 보아도 가슴 한 편이 아려오는 우리 언니, 나에게는 엄마 같은 우리  큰언니!
제가 언니 곁을 떠난 지도 10년이 넘었네요.
언제나 마음조이며 이 동생을 자식처럼 대해 주시고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언니였죠.
사랑하는 우리 언니, 저는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었기에 큰 언니가 우리 엄마인줄로 알고 컸어요. 어려서부터 내가 어렵고 힘들 때도 그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늘 내 곁에는 언니가 있었으니까요.
언니, 저는 엄마, 라는 말보다 언니, 라는 말을 먼저 배웠지만 엄마 있는 애들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언니는 엄마를 잃은 내가 내 나이 또래 애들 속에서 내가 혹시 주눅이 들까, 배가 고플까 항상 걱정해 주셨고 추울세라, 더울세라 애틋하게 사랑해 주셨어요.
한 끼 먹고 나면 늘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했던 너무나 째지게 가난했던 시절 이 동생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던 우리 언니를 제가 어지 잊을 수가 있겠어요?
사랑하는 우리 언니, 게다가 유달리 저는 어려서 왜 그렇게 병을 달고 살았는지 아프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죠. 친구들과 놀다가도 갑자기 쓰러지면 언니는 나를 잔등에 업고 먼 병원으로 정신도 없이 뛰어가곤 했잖아요.
아, 그리고 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사연이 또 있어요.
자식처럼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저를 시집보내 던 날, 부모가  있는 집 딸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그렇게 없는 살림이 바닥나도록 진심으로 성의껏 해 주시고도 시집을 가는 제 손을 잡아주실 부모 생각이 날세라, 남의 집 딸들보다 제발 잘 살아 주기를 바라며 언니는 너무 많이 슬퍼 하셨죠.
그 날, 농촌마을의 시골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앉아 남 몰래 우시던 언니모습이 전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각나요.
그리고 항상 위가 좋지 않아 고생한다고 언니는 그 없는 살림에 어쩌다 찹쌀 한 줌이라도 생기면 저에게만 따로 해 먹이시곤 했어요.
우리 엄마가 살아 계셨던 들 언니보다 더 잘 해주셨을까요.
언니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아 실제로 엄마와 딸 같은 사이였죠.  여섯 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 난데다 부모를 일찍 잃고 나니 언니를 정말로 엄마라고 생각했고요.
사랑하는 우리 언니, 그렇게 내가 잘 살기를 바라고 엄마처럼 걱정해 주셨는데 북한이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신의주에서 신발 같은걸 가져다가 라진, 선봉, 청진 지역에 넘기는 장사를 같이 다녔죠. 크게 남기는 장사도 못 되는데다 증명서 떼고 차표 사는데도 뢰물을 주어야 했던 북한이었죠.
게다가 간부라고, 경찰이라고, 보위원이라고 여기저기에서 서슴없이 뢰물을 달라고 하고 눈만 뜨면 사회적지원은 왜 그렇게 많은지 정말 당당하게 장사를 하고 살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어요.
사랑하는 우리 언니, 매일 악착같이 뛰어다녀도 늘 그 자리니 더는 살 수 없어 결국 저는 북한을 떠났어요. 엄마 같은 우리 언니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몰래 북한을 떠나온 이 동생을 많이 욕하셨을 거 에요.
저도 지금 와서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근데 그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어요.
언니, 언제나 자식처럼 위해주시고 근심 걱정 놓을 날 없이 사랑해 주시던 동생은 지금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을 떠나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잘 살고 있어요.
오히려 내가 북한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 게 더 궁금해요.
그렇게 어렵게 북한을 떠났기에 저는 단순하게 배불리 먹고 살 수 없어 대학에서 늦은 나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경영학과 복지학을 전공하고 학사학위까지 받았어요.
그 것도 돈 한 푼 안 내고 오히려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했어요.
언니, 전 지금 이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당당한 복지사로서 정부의 시책이 우리 국민들에게 잘 차례지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언니, 내 동생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하면서 언니도 선뜻 믿겨지지가 않을 거 에요. 북한에는 복지사란 직업이 없으니 더군다나 잘 모르실 수도 있어요.
남조선에는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 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어 사랑으로 안아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게 사회복지사들이 할 일이랍니다.
북한에서였다면 꿈에도 생각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대한민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이런 사회복지가 너무 잘 되어 있어요.
언니 동생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 일을 하고 있어요. 아마도 지금 당장 언니를  만난다고 해도 언니는 저를 잘 알아보지 못 할 것 같아요.
너무 많이 달라지고 너무 많이 당당해졌으니까....
사랑하는 우리 언니, 나는 이제 통일이 되면 언니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힘들게 사는 어르신들, 장애인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회복지사가 될 겁니다.
언니, 저의 그 꿈이 현실로 될 때가지 언니는 어떻게 하든 꼭 살아 계셔야 해요.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나고 내가 다시 언니를 볼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오면 얼마나 좋겠어요.
언니, 사랑하는 내 언니야, 제발 그 날까지 아프지 말고 잘 버텨주세요. 그저 무조건 살아만 있어주세요.
언니, 너무너무 보고 싶고 너무너무 많이 사랑해요.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언니를 제일로 사랑하는 동생으로부터...

입력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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