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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메디치 가문과 암스테르담 은행이야기

방송일
2019-10-11
진행
조현우
시간

북조선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규모로 귀금속을 가져온 덕분에 세계적인 교역 망이 형성된 이후 유럽에서 새로운 세력이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바로 시장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한 상인들입니다.

오늘은 그들 중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과 암스테르담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로마 교황청의 외환거래를 담당하면서 빠르게 성장합니다.

당시에는 교황청뿐만 아니라 많은 상인들은 장거리 무역이나 세금업무를 할 때 금화, 은화, 금속주화 등 다양한 주화가 공존했기에 돈을 바꾸는 절차로 부담이 컸습니다. 바로 이 부담을 메디치 가문이 덜어준  것입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이 중시한 사업은 환어음 중개 업무였습니다. 여기서 환어음이란 중세의 치안불안 및 부실한 도로망이 빚어낸 상품으로, 발행지가 아닌 제2의 장소에서 이를 소지한 사람에게 여기에 적힌 액수만큼 현금으로 지불하게 하는 일종의 명령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돈의 액수가 적혀진 종이입니다. 예를 들어 이태리 상인들이 프랑스 동부에서 현지 상인에게 모직물을 구입하고 물건 값을 화폐가 아닌  환어음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 환어음의 발행인은 이태리 상인이고, 수취인은 현지 상인이 지정하는 다른 도시에 사는 제3자가 됩니다. 이 제3자는 물건 값에 해당하는 돈을 이태리 상인의 대리인에게 지급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태리 상인은 유럽 도처에 퍼져 있는 대리인 망을 이용해 물건 값을 치렀고, 프랑스의 모직물 상인은 자기가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면서 다른 도시에 사는 채무자에게 진 빚을 갚게 됩니다.

당시 환거래는 상인들에게 여러모로 편리한 거래방식이었습니다. 금화나 은화를 운반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무역을 하는 거대상인의 입장에서는 교환비율의 차이를 이용한 추가 이익까지 거둘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습니다.

특히 당시 유럽은 국왕뿐만 아니라 자치 도시와 공화국들도 독자적인 화폐를 주조했기에, 상품 대금을 귀금속 화폐로 지불하기보다는 환어음을 발행해 채무와 채권을 각자의 장부에서 처리 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어음 거래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귀금속 화폐의 이동이 최소화되는 가운데 상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상거래가 많았습니다.

사업에서 신용 및 외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사업 안전성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의 이탈리아 가문들은 위험을 서로 공동 부담하는 방법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 분산 방식은 사업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이기는 했지만, 큰 위기가 발생하면 다 함께 파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전염병의 유행 혹은 프랑스나 영국 국왕의 파산 같은 충격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통화를 수급에 따라 환전해주고, 자금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인들에게 어음을 활인해주는, 신뢰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출현한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금융기관의 설립을 역사상 처음 실현한 것이 암스테르담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연합 주에서 유통된 다양한 통화가 상인들에게 실무적인 문제로 제기되자 그에 대한 해법으로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을 세웠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서로 다른 돈을 찍어내는 기관인 조폐국이 14개나 있었고, 유통된 외국 통화 규모도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상인들이 표준화된 통화로 예금 구좌를 개설하도록 하여 수표와 자동이체 시스템 등 오늘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도를 실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 덕분에 상업 거래는 점차 실물 주화 없이도 가능해집니다. 당시 암스테르담 은행은 현대적인 의미의 은행하고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은 대출이 주된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은행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낮선 것이었기에 언제 망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세운 것이라고 하여도 ‘언제든 돈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은행에 돈을 맡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은행은 예금이 유입되면 이것을 운영하는 방식보다 신뢰를 우선시 했습니다. 은행의 자산인 귀금속으로 거의 100%에 가까운 지급준비금으로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예금자들이 현금을 동시에 요구해온다 해도, 암스테르담 은행은 거의 모든 예금자에게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현금이 충분했던 것입니다.

영국, 프랑스 등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은 당시까지만 하여도 1인당 생산성 향상 속도가 연 0.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인구가 계속증가하면서 1인당 소득의 감소로 주변국들의 경제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네덜란드는 달랐습니다. 네덜란드는 인구가 증가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신뢰에 기초한 금융시스템의 정착입니다.

여기에 농업생산성 향상, 해외시장 개척 등이 선진적인 금융시스템 정착을 받쳐주어,  이런 기적 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북조선에 이러한 기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율적이며 신뢰할 만한 은행의 존재는 상거래의 편리함을 최고로 높여줍니다. 중앙은행이 주민들에게서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오늘의 북조선현실과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북조선의 중앙은행은 전 인민적 소유라는 명목으로 개인들의 저금을 제 마음대로 처리하고 제 때에 당사자들에게 주지 못하는 세계유일의 은행입니다. 이제 북조선 에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은행이 만들어 져야 합니다.

인민들이 자신의 자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은행이 있고, 이를 이용해 자유롭게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시장이 안전하게 작동하려면 다양한 거래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이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사실로 존재한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이 교황과 연계된 권력과 넓은 지점망을 이용해 일세를 풍미했다면, 암스테르담 은행은 “시스템‘을 만들어 은행업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평가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메디치 가문과 암스테르담 은행에 이루기까지의 금융변화와 혁신이 가져온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개혁방송의 조현우였습니다.

입력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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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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