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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중국으로 유입된 아메리카 대륙의 은

방송일
2019-12-09
진행
조현우
시간
북조선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전 시간에 이어 중국이 ‘일조편법’이라는 역사적인 개혁을 단행한 후 부족한 은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유입되었는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역사이야기를 하다 보면 ‘운명’이라는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는데, 16세기 중국과 스페인의 만남이 바로 그렇습니다. 중국이 개혁이후 ‘은화부족’사태를 겪고 있을 때,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의  멕시코와 페루에서 은광을 발견합니다.


멕시코에서 출발한 스페인의 대규모 선단이 필리핀을 거쳐 중국에 도달한 다음, 도자기나 비단 구입 대금으로 은화를 지불함으로써 중국의 은 부족 문제가 해결됩니다. 일부 역사가들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은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은이 중국에 유입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일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유럽에서 중국산 제품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은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유입될 정도인가? 하고요.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은과 금의 교환비율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즉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이 은의 가치를 높게 쳐주었다는 것입니다. 16세기에 금과 은의 교환비율을 보면 유럽에서는 대체로 1:12수준이었다면 중국에서는 1:6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은의 가치가 유럽보다 중국에서 2배가량 높았으므로, 유럽 사람들은 은을 중국으로 가져가기만 해도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왜 벌어졌을 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메리카대륙의 사카데카스와  포토시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은 광맥이 발견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 요인은 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금이 많이 생산됐다는 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일보의 사도 금광으로, 역사기록에 따르면 금의 연 생산량이 연간 6만~9만 kg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유럽에서 중국으로 은이 대대적으로 이동함에 따라 금과 은의 교환비율은 서서히 좁혀지기는 했지만 이동에 필요한 시간과 높은 비용으로 인해 중기선의 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꽤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금에 대한 은의 교환비율은 역사적으로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대략 1:60정도에서 거래가 이뤄지지만, 과거에는 이 비율이 지역마다 차이가 났습니다.


특히 16세기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다지를 발견하면서 동서양의 금은 교환비율은 거의 2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 여행 이후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의 항해가 정기적으로 이뤄지면서 일종의 ‘차익 거래’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증기선과 무선전신 등 기술혁신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동서양의 금과 은의 교환 비율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금뿐만이 아닙니다.


19세기 전신통신 망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대서양을 사이에 둔 유럽과 아메리카대륙 간의 정보는 매우 폐쇄적으로 유통되었습니다. 그와 관련한 재미나는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뉴욕항의 면화 수출업자들은 핵심 면직물 공업 지역이었던 영국 리버풀의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리버풀 뉴스가 인쇄된 신문이 배에 실려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시장상황에 깜깜 이었다고 합니다.


대서양을 거쳐 뉴스가 전달되는데 7~15일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하니 알만하지요?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뉴욕 면화 가격에 운반비용을 더한 수준에서 리버풀 면화 가격이 책정되어야 했지만 실제 가격차는 더 크게 벌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1858년 8월 5일 대서양을 가로질러 해저통신케이블이 놓이면서 두지역의  면화 시장 정보가 시차 없이 바로 전달되었고, 그 덕분에  두 시장의 가치는 급격히 축소되고 안정세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중국과 유럽의 금은 교환비율이 저렇게나 크게 벌어진 것이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정보가 매우 귀한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중국과 유럽의 금 교환 비율의 차이를 통한 정보의 귀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음 시간에서는 금과 같은 귀금속의 유입과 유출이 중국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좀 더 긴 시각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북한개혁방송의 조 현우였습니다.
입력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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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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