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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주주의 역사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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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종교개혁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2)

방송일
2021-02-22
진행
시간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의 자유와 민주주의, 개혁과 개방의 새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계 역사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강좌에서는 종교개혁이 발생한 원인과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에 관한 두 번째 시간으로 기독교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과 종교개혁이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며 교황청의 면벌부 판매를 비판한 루터는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습니다. 중세 시대에 파문을 당한 사람은 사실상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예로 11세기 중엽, 즉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 독일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는 성직자를 임명하는 문제로 당시 교황인 그레고리오 7세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교황에 의해 파문당하고 말았습니다.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인리히 4세에게 충성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했고 귀족들은 왕에게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위기를 느낀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머물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카노사로 가 추위가 심한 겨울 눈밭에 3일 동안 서서 용서를 구했고 교황은 파문을 철회해 주었습니다.  


이 예에서 보인 것처럼 교황의 파문은 루터의 신변을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루터는 그를 지지하는 독일 제후들의 보호로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변호한 루터는 프리드리히 4세의 성에 숨어 지내며 최초의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며 개혁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후 1529년 4월 독일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루터의 신앙을 지지하는 종교개혁파의 제후와 여러 도시들은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며 스스로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이의를 제기한다, 또는 저항한다는 뜻의 단어가 영어로 프로테스트이고 이 저항한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은 독일의 루터(1483-1536), 스위스의 츠빙글리(1484-1531), 프랑스의 칼뱅(1509-1564) 등의 개혁자들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강력하게 추진되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개신교를 지지한 독일의 제후들과 도시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부터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독일 튜빙겐 지방의 슈말칼덴이라는 곳에서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결국 루터가 죽은 154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개신교를 탄압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오랜 기간의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구교와 신교, 즉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전쟁은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평화 조약을 맺음으로 일시적으로 봉합되었습니다. 각 지방의 군주(제후)가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평화는 일시적이었습니다. 통일이 되어있지 않던 독일 각 지역은 군주들의 종교에 따라 구교와 신교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의 반목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의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조약을 맺고 62년이 지난 1617년, 독실한 가톨릭 신도이자 2년 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페르디난트 2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맺은 협약을 지키지 않고 가톨릭이 지배하던 과거로 역사를 돌리려 했습니다. 당연하게 종교의 자유를 침해받은 개신교측 제후들은 이에 반발했고 그 갈등은 독일을 벗어나 전 유럽을 전쟁으로 내몰았습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잉글랜드·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과 가톨릭 국가였음에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개신교 편에 선 프랑스가 속한) 개신교 동맹과 그 반대편에 가톨릭을 지지하는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연합으로 나누어져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두 세력은 독일을 무대로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무려 30년이나 전쟁을 지속했는데 이로 인해 독일 전역은 기근과 질병으로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전쟁에 지친 제후들은 1648년 독일의 베스트팔렌에 모여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근대 최초로 외교회의를 통해 국제법이 만들어진 이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유럽의 모든 국가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개신교 국가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과 이후 구교와 신교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사건들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선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성경 본연의 의미로 돌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표어를 내세우고 진행된 종교개혁은 부패한 교회와 여러 제도들을 개혁하고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라틴어로만 되어 있던 성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됨에 따라 인민들이 마음껏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과 한 개인이 교회의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종교적 측면에서의 개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종교개혁의 가장 큰 의미가 집단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회가 변해 한 개인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데 있는데,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바로 이 한 사람의 존재와 자유가 중요해진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30년 전쟁의 결과로 왕처럼 군림하던 지방 제후들이 몰락함에 따라 근대 국가가 형성될 수 있는 기초가 세워졌습니다. 노예처럼 농토에 묶여있던 주민들에게 도시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고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가 증대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한 곳에 집중된 권력은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때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게 되고 결국 갈등 끝에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종교개혁이라는 큰 사건을 거치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이 종교개혁과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세계 민주주의 강좌 여덟 번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종교개혁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명예혁명에 대해 알아보고 이 사건이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박두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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