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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주주의 역사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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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중세 도시의 꼼뮨 운동과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였는가

방송일
2021-01-25
진행
시간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의 자유와 민주주의, 개혁과 개방의 새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계 역사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선 방송에서는 중세의 마녀사냥 관습과 인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중세 도시들에 나타난 민주주의의 모습들은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지난 강좌에서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중세는 역시 암흑시대였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녀사냥은 중세가 끝나고 근대로 들어가며 생긴 사회 혼란 속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사회 지도층이 가지고 있던 권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그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희생자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마녀들이 지목된 것입니다.


중세를 대표하는 정치 제도는 봉건제였습니다. 각 나라에는 왕이 있었고 그 왕 밑에는 왕으로부터 토지를 수여받은 여러 명의 봉건 영주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영주들의 토지에는 영주의 지배를 받는 노예와 같은 농민, 즉 농노들이 있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땅에서 나온 작물의 대부분은 영주들의 차지였고 인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이름 아래 많은 농민들이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중세 사회의 내부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둡고 침울했을 것만 같은 선입견과는 달리 중세의 도시는 놀라울 정도의 자유를 지니고 있었고 활기찬 운동력을 가지고 발전했습니다. 종교라는 절대적 가치가 사회를 지배했지만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누렸던 것입니다. 


중세 도시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시민들의 자치 단체인 꼼뮨(사전에 보니 코뮌의 북한 말이라고 하네요)과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인민주권의 사상입니다. 근대의 산물일 것만 같은 이 제도와 사상은 사실 11세기부터 13세기, 즉 10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발전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주요 도시들에서 나타났습니다. 


최초의 꼼뮨은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인 기원후 1000년경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이 도시의 시민들은 상업을 통해 부유해졌고 도시의 통치자에게 돈을 내고 자유를 살 수 있었습니다. 자유 시민들은 힘을 모아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세웠고 이것이 세계 최초로 세워진 꼼뮨이었습니다.

자유인들은 개인적 자유와 능력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도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고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촌에서 도망쳐온 농민들도 도시에 1년 이상 거주하며 영주에게 붙잡히지 않으면 자유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세의 도시는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꼼뮨의 구성원들은 왕이나 공작, 주교나 수도원장과 같은 사회 지배세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에게는 일정 규칙을 적용했습니다. 공동체의 규칙을 지키며 서로의 결속이 더욱 강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자유에 대한 갈망이 꼼뮨 운동 및 도시 형성의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중세의 도시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은 인민주권 사상입니다. 중세의 대표적 정치 제도인 봉건제도와 인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인민주권 사상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도시의 자유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주요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지배계층과 싸웠고 권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와 영국의 경계 지역에 위치했던 플랑드르 지역입니다.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영국과 맞닿아 있다는 유리한 지리적 특성과 상인 길드의 역량을 토대로 폭넓은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1100년대 초반 새롭게 선출된 백작이 시민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침해하고 권리를 인정하지 않자 꼼뮨은 봉기를 일으켜 백작을 몰아내고 도시를 지켰습니다. 


자유를 사랑했던 플랑드르 지역의 시민들은 백작의 상속권이나 프랑스 국왕의 백작 선출권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통치자는 스스로 뽑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이 있던 그 옛날에도 왕의 권위에 대항해 인민들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지키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후손들에게 전해준 용감한 시민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중세에도 민주주의의 흐름은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권세가들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세워 자유를 갈망하고 투쟁하여 쟁취함으로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유 시민들이 만든 꼼뮨의 등장과 제도화는 고대 로마의 공화주의와 근대 국가의 공화주의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습니다. 실제로 꼼뮨에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권력 기구들이 있었습니다. 꼼뮨의 지도자들은 힘이 한군데에 집중되어 독재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체의 핵심 기능들을 여러 기구에 나누었습니다. 권력이 분산되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권력 나누기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인 권력분립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중세는 분명 오늘날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와 비교할 때 민주주의의 전통은 약화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중세 사회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끊어질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권력자에 대한 중세 도시에 살았던 시민들의 투쟁과 노력, 무엇보다 자유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없었다면 로마시대에 빛났던 공화주의의 전통은 결코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오늘의 강좌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암흑시대라 불린 중세였지만 그 내부에는 자유를 향한 사람들의 욕구가 있었고 권력자들에 대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탄생한 민주주의의 씨앗은 자유를 사랑한 중세의 도시민들을 통해 중세 시대에도 죽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세계 민주주의 강좌 여섯 번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종교개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박두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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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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