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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주주의 역사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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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에 나타난 인권 문제는 어떠했는가

방송일
2021-01-11
진행
시간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의 자유와 민주주의, 개혁과 개방의 새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세계 역사 강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선 방송에서는 기독교의 탄생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로마시대에 탄생한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인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저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주인공이었던 서양의 고대에 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그리스의 아테네와 왕이 없는 시민들의 지배를 이룬 로마의 공화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유럽의 정치와 문화를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시대를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중세 시대는 학자들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이 끝난 1453년까지의 약 천년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학자들은 세계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구분하는데 이러한 시대구분은 18세기, 즉 1700년대를 살았던 유럽의 지식인층이 역사 구분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찬란했던 그리스, 로마 문명을 고대, 그리고 그 고대 문화를 다시 발견해 복구한 1600년대 르네상스 이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발전된 시기를 modern age, 즉 현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천 년 가까운 시간을 중간 시기로 하나로 묶어 중세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들은 중세를 종교가 사회를 지배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받지 못한 암흑시대라 칭하며 비난하였습니다.

이러한 중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오늘 다룰 마녀사냥입니다. 사실 마녀사냥이 중세에 일어났다고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 마녀사냥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러한 현상이 대대적으로 확산된 것은 기독교의 두 세력인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이 끝난 후, 즉 중세가 끝난 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중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마녀사냥을 연결시켜 생각했고 그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마녀사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으셨나요? 중세 시대 마녀는 실제로 존재했을까요? 아니면 어떤 죄 없는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인 슬픈 이야기였을까요?

정답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는 현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단어인데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죄 없는 한 사람에게 고문을 가한 후 죄를 만들어 자백하게 하고 결국 죽였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옛날 마녀사냥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요? 유럽에서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즉 1500년대 말부터 1600년 사이에 약 6만 명이 넘는 사람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녀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하듯이 마녀로 지목된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혼자 사는 여성, 특별히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지목되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중에 보호해줄 남편마저 없었기 때문에 ‘악마와 간통했다’는 혐의를 씌우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녀로 몰려 죽은 사람의 재산을 다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에 홀로 사는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기 쉬웠습니다.

그렇지만 마녀사냥이 널리 퍼진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지도층이 이 마녀사냥이라는 관습을 통해 사회의 불안을 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종교 전쟁의 피해와 전염병과 가뭄의 확산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때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사회의 혼란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받아낼 희생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마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녀가 악마와 계약을 해 악마를 섬기고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마녀 집회에 참석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몸에 악마가 남긴 상처가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웃들끼리 마녀가 아닌지 서로를 감시하였고 조금의 의심이 들거나 상대방의 재산이 탐나면 마녀라고 고발했습니다.

고발당한 여성은 마녀가 맞는지 감별사들에 의해 확인을 받아야했습니다. 옷이 벗겨지고 모진 고문을 가해 마녀임을 자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몸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또는 물에 빠뜨렸을 때 살아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마녀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녀로 감별되면 화형, 즉 불에 타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녀사냥의 가장 유명한 희생자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입니다. 영국의 공격으로 패색이 짙었던 프랑스는 17살의 시골 소녀인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100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끝난 후 잔 다르크는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쟁 후에도 영국과의 국지 전투는 계속되었는데 그 와중에 영국군의 포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잔 다르크의 정치적 필요성이 사라진 프랑스 왕은 그를 구하지 않았고 영국은 프랑스의 전쟁 영웅을 마녀로 몰아 복수를 했던 것입니다.

잔 다르크가 불행하게 화형당하고 25년이 지난 후 프랑스의 샤를 7세는 그가 마녀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그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사람들은 잔 다르크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 칭송하고 있지만 마녀로 몰려 이미 죽은 잔 다르크를 다시 살리진 못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오늘 들으신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들으셨습니까? 한편에서 어떻게 저런 끔찍한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셨을 겁니다.

마녀사냥은 수백 년 전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를 시기하고 끌어내리고 싶은 본성이 있습니다. 특별히 사람들은 전쟁이나 전염병, 가뭄 등의 재난이 발생해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그 고통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희생자를 찾게 됩니다. 마녀사냥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 비극이었고 지금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으로 세계 민주주의 강좌 다섯 번째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세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는가’라는 주제로 중세 도시국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박두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입력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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