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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특집방송:(2)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

방송일
2020-11-10
진행
시간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1주년을 맞으며 마련한 특집   두 번째 시간에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그리고 독일통일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1961년 5월 동부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미국이 통치하는 서부지역을 봉쇄하는 콘크리트 장벽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벽의 건설로 동부독일 속에 있는 수도 베를린의 서쪽 지역은 고립되었습니다. 완전한 섬이 되어버린 격이었죠.
동베를린, 서베를린을 완전히 갈라놓은 이 견고한 장벽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961년 이전에는 어떤형태로 있었을까요? 초기 모습은 바로  벽돌로 만든 장벽모습으로 단순하게 쌓은 모습이었습니다. 총 길이는 45키로메터, 약 100리정도였죠. 그러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견고하고, 보다 넘기 힘든 형태, 보다 길게 건설됐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강화된 베를린 장벽은 총길이 155킬로메터에 건설되었는데, 서쪽을 가르는 장벽은 106키로메터였고 나머지는 철조망이였습니다.
베를린 장벽 건설이 시작되기 전인 1961년 1월부터 그해 8월까지 약 16만명의 동부독일 사람들이 서부독일로 넘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자유를 빼앗길수 있다는 두려움, 가족과 떨어지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1961년 8월 이후부터는 동부독일 사람들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장벽을 넘었습니다.

처음에 건설된 장벽은 사람 키높이 보다 낮았는데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뛰어가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육중한 화물차량 같은 것으로 장벽을 들이받아 허물어뜨리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차단봉 밑으로 차를 몰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네명의 동부독일 청년들이 쏘련군 군관복을 입고 승용차를 몰고 류창한 러시아어를 하면서 넘어간 경우도 있습니다. 서 베를린과 가까운 아파트에서는 땅굴을 파서 넘어가기도 하고 장벽 사이의 건물에 밧줄을 걸고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필사의 각오로 동베를린에서 장벽을 넘어 서 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총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때까지 장벽을 넘다가 사망한 동부독일 사람들은 약 천명이 넘었습니다. 동과 서를 가르는 이 장벽은 그 의미를 넘어 피를 부르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이 흐른 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쏘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이 극대화되면서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쏘련 공산당총비서 미하일 고르바쵸브는 뻬레스뜨로이까, 즉 재건이라는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동유럽으로 확산됐습니다.

그럼 바르샤바조약을 맺은 국가중 가장 튼튼하다고 평가받던 동독은 어떠했을까요? 1989년 동부독일은 경제는 거의 파산상태였고 인민들은 개혁조치의 실패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동유럽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면서 1989년 5월 웽그리아가 이웃 자본주의 나라인 오지리와의 국경봉쇄를 해체하고 철조망도 제거했습니다.
웽그리아와 오스트리아와의 자유여행이 가능해지자 동독사람들은 여행을 간다면서 웽그리아를 통해 서독으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서독 정부는 동독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무조건 받아주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었죠.

동독 사람들은 웽그리아의 서독 대사관으로 물밀 듯이 들어가 서독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서독으로 가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의사, 간호사, 변호사, 기업가 등 동독의 젊은 인재들이였습니다.
동독정부는 웽그리아에 동독사람들의 탈출을 막아달라고 요구했지만 묵살당했습니다. 이렇게 서부독일과 동부독일 사이에 세워졌던 베를린 장벽은 서서히 그 의미를 상실해감녀서 철의 장막이 무너져 갔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동독사람들은 웽그리아뿐만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와 뽈스까 등의 나라 서독대사관으로 밀어닥쳤습니다. 그리고 1989년 9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월요시위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10월 7일, 동독의 수도 동베를린에서 언론자유화, 여행의 자유화와 개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의 시위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동독지도부는 쏘련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미하일 고르바쵸브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확인했습니다.

급해난 동독정부는 시위대를 달래기 위해 1989년 11월 9일 오후 6시 58분 기자회견을 통해 여행 자유화정책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 장에서 이딸리아 기자가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작되는가?”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동베를린 공산당 총서기 권터 샤보브스끼는 별생각 없이 “지금,  당장 가능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윗선에 물어보고, 답변을 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말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다 이딸리아 기자가 본국에 보내는 기사에서 서독으로의 여행 자유화 조치를 베를린 장벽 붕괴로 착각하여 보도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붕괴한다는 이딸리아 안사통신사의 보도는 미국을 거쳐 다시 서독 텔레비죤 방송으로 보도됐습니다.
서독 텔레비죤 방송을 통해 여행 자유화를 즉시 실시한다는 보도와 베를린 장벽을 붕괴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순간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서독과 동독의 수많은 사람들이 공구를 가지고 순식간에 베를린 장벽으로 모여들어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함마와 불도젤, 심지어 기중기까지 끌고나와 장벽을 부스기도 했는데 독일 국경경비대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를린 장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졌고 동독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다”를 웨치며 서독으로 넘어갔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듬해인 1990년 3월, 독일민주공화국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자유선거가 시행되였고 이 선거에서 통일을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서독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통일되였습니다.

이후 베를린 장벽은 력사적 기념물로 남기기 위한 약간의 구간과 감시탑 등을 제외하고 1991년 11월 완전히 철거되었습니다. 서부독일과 동부독일의 통일이 된 1990년부터 지금까지 28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독일은 완전한 하나의 국가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어떤 교훈은 우리에게 주고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아무리 강해보여도 실제로 부닥쳐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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