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방송

북한개혁방송은 언제나 여러분들에게 올바르고, 신속한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9.9절 특집방송 : 1회 소련 군정에 의해 수립된 북조선 임시정부

방송일
2020-09-08
진행
시간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9월 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7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공화국 창건 72돐을 맞아 쏘련과 중국이 공개한 력사적 자료들과 사실을 토대로 북조선 정부 수립의 진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 시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전에 수립됐던 북조선림시정부는 쏘련 군정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올해에도 9월 9일을 맞으며 조선중앙방송과 로동신문, 텔레비죤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고 할 것입니다. 북조선의 매체에서는 늘 김일성이 조선 해방 진공 작전을 진두에서 지휘해 북조선을 해방시켰고 북조선에 림시정부를 수립한 후, 1948년에 정부를 수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8.15해방 후 북조선에 수립된 북조선림시정부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한 이후 북조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가 아니라 쏘련 군대였습니다. 

김일성 혁명력사에서는 김일성이 1939년 소할바령 회의 이후로 소부대공작 활동으로 전환했다는 식으로 선전합니다. 하지만 당시 김일성은 소부대공작 활동이 아니라 관동군의 토벌을 견디지 못하고 1940년 10월에 쏘련으로 들어갑니다. 

이듬해인 1941년에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김정일인데, 당시 이름은 쏘련식으로 ‘유라’였습니다. 쓰딸린의 명령에 의해 김일성은 조선인들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쏘련군 제88정찰려단 1대대 대대장에 대위로 임명되었습니다. 

쏘련 극동군 제88정찰려단장은 김일성 회고록에도 나오는 중국 사람인 주보중이였는데, 그는 쏘련군의 명령과 지시를 받아 활동했습니다. 김일성이 속한 제88려단의 목적은 1945년 8월 24일, 려단장 주보중 대좌가 쏘련 극동군 와실리옙스끼 총사령관에게 보낸 긴급 보고서에 잘 나타납니다. 

주보중 려단장은 "제게 위임된 제88 정찰여단은 1942년 6월 쓰딸린 동지의 직접 지시에 따라 창설됐습니다. 중국 동지들 대부분은 만주에서 일본 강점자들에 맞서 빨치산 운동에 참가한 지도자들입니다. 여단은 이들 지역에서 군사·정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쏘련은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8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조선과 만주를 공격합니다. 쏘련 군대는 8월 11일 나진을 공격하기 시작해 8월 18일에서 22일까지 공격을 펼쳐, 원산, 함흥, 라진항을 점령했습니다. 

쏘련군이 남진하여 8월 24일에는 평양, 28일에는 신의주에 진주했습니다. 평양시를 점령한 쏘련 극동 방면군 제25군의 사령관 치스쨔꼬브 대장은 8월 25일 ‘북조선 주둔 최고사령부’를 설치하고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때 수립된 쏘련 군정 통치는 1945년 8월부터 북조선 정부가 수립된 1948년 12월까지 실시됐습니다. 원래 1945년 8월 평양에는 쏘련군이 진주한 8월 24일보다 일주일이나 앞선 8월 17일에 이미 평양 건국준비위원회가 수립돼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에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20여 명의 민족주의독립운동가가 ‘평양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쏘련 극동지역에 있던 김일성은 9월 19일에야 쏘련 군함 ‘푸카조프’호를 타고 다른 70여 명의 조선사람들과 함께 원산항으로 귀국했습니다. 

1945년 5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쓰탈린은 곧바로 극동군 정치부와 체까에게 38도선 이북의 지도자감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쏘련군 극동군 총사령관 와실리옙스끼 원수의 부관을 지낸 꼬바렌꼬는 “김일성이 북조선에 귀국하기 보름 전인 1945년 9월 초순 쓰탈린이 김일성을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불러 크렘린궁과 별장에서 단독으로 만나 그를 북조선의 최고 지도자 후보로 정한 후 그를 믿고 평양에 보낸 것입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1993년 3월 26일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보리스 엘친 대통령의 쏘련 정부는 수많은 조선 관련 극비문서들을 공개했습니다. 이때 공개된 극비문서에는 1945년 9월 20일 쓰딸린이 와실리옙스끼 극동전선 총사령관에게 보낸 명령서가 있는데 북조선 점령에 관한 7개 항목이 있었습니다. 

명령서에는 북조선에 소베트 정권을 설립하지 말 것, 부르죠아 민주정권 형식의 정부를 수립할 것, 북조선 인민에게 쏘련 군정은 일본을 내쫓기 위해 진주한 것, 쏘련 군정이 북조선을 보호하는 것 등 이었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이 공설운동장에서 개선 연설을 하게 된 것도 쏘련 군정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평양공설운동장 환영 연설 바로 이틀 전인 1945년 10월 12일, 쏘련 군정 최고 사령관 치스챠꼬브는 포고문을 공표하였습니다. 

치스챠꼬브가 공표한 포고문은 “붉은 군대는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왔는가”라는 제목의 게시문 형태로 발표되었고 이어서 쏘련 군정인 제25군 사령관의 명령서 제7호도 발표되었습니다. 

명령서 7호에는 북조선에서 8·15 이후에 수립된 각 정당 단체들은 지방자치기관과 쏘련 군정 경무국에 정관과 명단을 등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장 부대는 해체하고 무기를 바칠 것도 요구하는 등 완전한 군정 체제로 돌입했습니다. 

이처럼 쏘련 군정의 치밀하고도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끝나고 10월 14일, 김일성이 개선 연설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김일성은 북조선 지도자로 내세워졌습니다. 당시 공설운동장 주석단에는 쏘련 군정 사령관을 비롯해 쏘련군 장령들이 참석했고, 조선 국기인 태극기와 쏘련 깃발이 설치됐습니다. 

쏘련 군정이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내세웠지만, 평양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정부 수립 활동이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평양에서는 10월 8일 각 당, 각 정파들이 모여 ‘이북 5도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28일에는 ‘북조선 5도 행정국’을 설치했습니다. 

쏘련 군정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 수립 작업을 주도적으로 펼쳤고, 조만식을 비롯한 국내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리하여 1945년 11월, 북조선인민회의를 구성하고 1946년 2월 8일, 제1차 회의를 열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쏘련 군정에 의해 만들어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는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에 김책과 홍기주를 세웠고 총 22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시 김일성 항일 빨치산 세력이 너무나 작고 정부 수립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서 쓰딸린은 쏘련에서 살던 조선사람들을 대규모로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쏘련공산당과 행정기관, 군대와 공장, 기업소, 문화, 예술 등 쏘련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던 간부들과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김일성을 도와서 림시정부를 만들고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의 전 단계인 림시정부는 쏘련 군정에 의해 수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해방 후 평양의 정치정세와 김일성의 반대파 숙청과정 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의 김정환이었습니다. 청취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2020-09-08
조회
98
작성자
북한개혁방송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72
어머니날 특집방송: 북조선의 어미니날은 누구를 위한 날인가
북한개혁방송 | 2020.11.16 | 조회 37
북한개혁방송 2020.11.16 37
171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특집방송 : (3) 변화의 시대, 통일을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북한개혁방송 | 2020.11.11 | 조회 27
북한개혁방송 2020.11.11 27
170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특집방송:(2)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
북한개혁방송 | 2020.11.10 | 조회 27
북한개혁방송 2020.11.10 27
169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특집방송 : (1) 랭전의 시작과 베를린 장벽 건설
북한개혁방송 | 2020.11.09 | 조회 56
북한개혁방송 2020.11.09 56
168
10.10 당창건 기념일 특집방송 : 3회 조선로동당의 운명과 미래
북한개혁방송 | 2020.10.10 | 조회 31
북한개혁방송 2020.10.10 31
167
한글날 특집방송: 한글날에 대한 생각
북한개혁방송 | 2020.10.09 | 조회 61
북한개혁방송 2020.10.09 61
166
10.10 당창건 기념일 특집방송: 2회 조선공산당과 조선로동당의 관계
북한개혁방송 | 2020.10.09 | 조회 24
북한개혁방송 2020.10.09 24
165
10.10 당창건 기념일 특집방송 : 1회 조선로동당의 뿌리는 무엇인가
북한개혁방송 | 2020.10.07 | 조회 62
북한개혁방송 2020.10.07 62
164
개천절의 유래와 의미
북한개혁방송 | 2020.10.03 | 조회 28
북한개혁방송 2020.10.03 28
163
추석특집방송 : 세계의 추석풍경
북한개혁방송 | 2020.10.02 | 조회 32
북한개혁방송 2020.10.02 32
162
추석음식열전 : 송편 이야기
북한개혁방송 | 2020.10.01 | 조회 32
북한개혁방송 2020.10.01 32
161
핵실험 특집방송:(2) 조선의 비핵화는 필연적이다
북한개혁방송 | 2020.09.24 | 조회 29
북한개혁방송 2020.09.24 29
160
핵실험 특집방송: (1) 2016년과 2017년의 핵실험 원인과 결과
북한개혁방송 | 2020.09.23 | 조회 28
북한개혁방송 2020.09.23 28
159
상업절 특집방송 : 국가의 공급보다 시장의 자유공급이 우월하다
북한개혁방송 | 2020.09.15 | 조회 95
북한개혁방송 2020.09.15 95
158
9.9절 특집방송 : 3회 신탁통치와 남북한 정부의 정당성
북한개혁방송 | 2020.09.10 | 조회 36
북한개혁방송 2020.09.10 36
157
9.9절 특집방송 : 2회 북조선 지도자는 스탈린이 내세웠다
북한개혁방송 | 2020.09.09 | 조회 41
북한개혁방송 2020.09.09 41
156
9.9절 특집방송 : 1회 소련 군정에 의해 수립된 북조선 임시정부
북한개혁방송 | 2020.09.08 | 조회 98
북한개혁방송 2020.09.08 98
155
9.5. 교육절 특집방송 :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교육으로 개혁하자
북한개혁방송 | 2020.09.04 | 조회 38
북한개혁방송 2020.09.04 38
154
추석특집방송 : 세계의 추석풍경
북한개혁방송 | 2020.09.02 | 조회 32
북한개혁방송 2020.09.02 32
153
청년절 특집 방송 : 대전환의 시대에 청년들이 앞장에서 변화를 이끌자
북한개혁방송 | 2020.08.28 | 조회 49
북한개혁방송 2020.08.28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