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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정전협정 평화체제 기념 특집방송 : (1)정전협정은 승리한 협정인가

방송일
2020-07-27
진행
시간

여느 해보다 아주 특별한 2020년에 김정은 위원장은 무기력하고, 최악의 코로나 급성폐렴 비루스 사태로 인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맞으며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시간에는 정전협정은 승리한 협정인가에 대해 알아봅니다.

조선인민은 물론이고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조미수뇌회담과 선언은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조미관계, 전쟁을 끝내고 새로운 평화시대, 발전의 시대와 나아가 통일까지의 희망을 잠깐이라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에서 발표한 조미공동선언에는 종전선언 내용도 있는데 조선반도에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휴전상태로 67년을 이어져 왔는데 이러한 상황은 조선의 발전에 막대한 장애와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북조선에서 1950년의 정전협정을 김일성 주석이 전쟁에서 승리한 협정이라고 선전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6.25전쟁 초기에는 북조선이 선제공격으로 한두달만에 부산지역을 제외한 남조선 거의 전부를 점령했습니다.
북조선의 남침으로 남조선 거의 전 지역이 점령되자 유엔안전보장리사회의 결정에 따라 16개 국가가 참가한 유엔군이 조선전쟁에 참전합니다. 1950년 7월 24일 일본 도꾜에 유엔군 사령부가 설립되고 같은해 9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조선인민군은 12만명이 투항하거나 포로가 되였고 전 전선에서 후퇴하게 됩니다. 미군이 지휘하는 유엔군과 남조선 군대는 북진으로 신의주, 강계, 청진 남쪽까지 북조선 거의 전지역을 점령했고 조선인민군은 전멸상태에 처했습니다.
다급해난 김일성은 강계를 림시수도로 정하고 10월 1일 쏘련의 쓰딸린과 중국의 모택동에게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10월 19일 모택동의 명령으로 26만명의 중국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전쟁이 개입했는데 사령관은 팽덕희였습니다.

수십만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전쟁에 참전하면서 유엔군과 남조선 군대는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1951년 1월 4일에는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도 했지만 다시 후퇴하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교착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대와의 군사작전 과정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김일성의 지휘능력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인 팽덕희는 조선과 중국 군대의 협조를 위해 조중련합사령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1950년 11월 16일 김일성이 베이징을 방문하였을 때 모택동, 주은래, 류소기 등과 협의해 조중련합사령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12월 7일 김일성과 팽덕희가 평양에서 회담을 하고 조중련합사령부를 창설했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을 총지휘하는 사령관에 팽덕희, 부사령관은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이였던 김웅이 되었습니다. 조종련합사령부 정치위원은 팽덕희, 부정치위원은 조선인민군 박일우가 되었는데 김일성은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일뿐이였습니다.

이때부터 김일성은 조선인민군의 군사작전지휘권을 조중련합사령부 사령관 팽덕희에게 넘겼기 때문에 더 이상 군사작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중국인민지원군의 공격으로 평양을 되찾은 다음날인 1950년 12월 7일 팽덕희에게 자신은 군사문제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조선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김일성이 6.25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에로 이끌었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김일성이 조선정전협정을 승리한 협정이라고 자랑할 수 없는 첫 번째 근거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근거는 정전협정은 유엔군이 먼저 하자고 제기 한 것이 아니라 조선을 뒤에서 조종하던 쏘련이 처음으로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 말에 미국과 영국 등의 나라들이 유엔에서 전쟁을 중지하는 안을 내기도 했지만 무산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유엔에서 전쟁을 중지하는 휴전회담을 하자고 제기한 것은 쏘련입니다. 미국과 쏘련이 합의해서 유엔주재 쏘련대표 말리크가 1951년 6월 13일 유엔에서 휴전협상을 제의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휴전협상이 진행됐습니다.

당시 군사지휘권은 없지만 명목상으로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였던 김일성은 전쟁을 끝내는 휴전에 찬성했습니다. 온 나라가 미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초토화되고 군인사망자도 계속 늘어나는데다 인민들의 고통도 심각해지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택동도 1951년 중국에게 유리한 립장을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휴전협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쓰딸린에게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스딸린은 미국을 약화시키고 사회주의 진영을 강화하는 등 쏘련에게 유리한 국제정세를 만들기 위해 정전협정 체결을 반대했습니다.

김일성은 1951년 “유엔군 측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겠다”고 나섰다가 쓰딸린으로부터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며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953년초까지 3.8선에 고착된 전선에서는 끊임없는 소모전이 벌어졌고 북조선은 미군의 폭격으로 완전한 페허가 됐습니다.
1953년 3월 5일 정전협정을 반대하던 쓰딸린이 갑자기 사망하고 나서야 휴전협상은 급속하게 진전돼 7월 27일 휴전이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정전협정을 위한 3년간의 휴전협상 중에서 김일성은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스딸린과 모택동이 6.25전쟁을 조종했습니다.

김일성은 모택동과 쓰딸린에게 요청해서 승인을 받고 6.25전쟁을 일으켰지만 조중련합사령부의 창설로 군사지휘권을 박탈당했습니다. 따라서 쓰딸린과 모택동이 3년간의 휴전협상을 뒤에서 주도하고 꼭두각시로서의 역할만 했던 김일성이 정전협정의 승리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6.25전쟁, 다시말해 조선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을 타승하고 승리한 정전협정을 체결했다는 것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6.25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을 타승한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은 거짓이고 실제로는 중국에게 군사지휘권까지 빼앗긴 허수아비였습니다.

6.25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였지만 전쟁 첫해인 1950년 이후부터는 조중련합사령부에 지휘권을 박탈당한 김일성이 승리자가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미제와 싸워 승리했다는 6.25전쟁의 왜곡 때문에 김일성 우상화가 됐고 3대세습이 이어져 올 수 있었습니다.
7월 27일 정전협정이 김일성에게, 조선에게는 패배한 협정이라는 것을 깨닳을 때 지금의 문제와 해결방도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조선의 평화는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모든 것을 조작하고 왜곡하면서 우상화 수단으로 쓰는 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입력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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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개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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