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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 특집 : 김일성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방송일
2020-07-08
진행
시간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4년 김일성주석이 사망한지 26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김정일, 김정은 시대를 맞으면서 그래도 김일성 시대가 좋았다면서 김일성 주석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력사적 진실은 김일성주석은 조선을 세운 개국 지도자도 아니고   지금까지 선전해왔던 대부분의 업적이 거짓이였음을 증명합니다. 조선개혁방송에서는 김일성 사망 26주년, 김정은 통치 8년을 맞는 지금 김일성의 진실에 대해 알아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흉내를 많이 냅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나타났던 초기에는 젊은 김일성 주석을 닮았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지지도에서 김일성 주석 옷차림까지 흉내냅니다.
지난 4월 11일 로동신문에 실린 사진에서 김정은은 모자와 옷, 자세까지  김일성의 모습을 모방했습니다. 1950년대말 김일성 주석이 전후 복구건설장을 현지지도 할 때 사진을 완벽하게 닮은 사진을 로동신문에 실은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을 흉내내는 것은 조선의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 김일성 주석에 대한 평가가 제일 좋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는 “김정일은 인민들 살림집에 신발신고 들어갔지만 김일성 주석은   장단지와 가마 뚜껑까지 열어보던 인민의 지도자였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김정일과 김정은 모두 김일성 주석보다 못한 정치를 했고 또 하고 있다는 것은 북조선 인민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선전하고 있는 김일성 주석의 업적은 아주 위대합니다.

그는 어려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었고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했고, 항일무장투쟁을 벌렸으며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을 해방시켰습니다. 6.25전쟁에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전후복구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 사회주의 공업국가를 건설했고 주체사상을 창시 했습니다. 이렇게 북조선은 지난 수십년간 김일성 주석의 위대성과 업적은 세계최고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떨까요? 김일성 주석의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이후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시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또 그의 손자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했을때는 화폐교환을 실시해 인민들이 피땀흘려 번 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김일성 주석을 훌륭한 지도자, 위대한 지도자, 그리운 지도자로 만들었는데 력사적 진실에 대하여 하나하나 밝혀봅니다.

첫째,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3.1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말로 어불성설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33명의 민족대표자들이 일제의 식민지배 통치를 반대해 독립선언서를 랑독하면서 3.1운동이 시작됐습니다. 1918년 중강진으로 이사하여 평양의 독립운동에는 참가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의 아들 김일성 주석은 당시 7살의 어린이였는데 3.1운동에 참가했다는 말자체가 거짓말인 것입니다.

둘째, 김일성 주석이 193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완전한 날조입니다. 1930년 8월 조선의 별에서 변절자로 나왔던  리종락이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를 만들었을 때 김일성은 대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1932년 조선혁명군을 만들었다던 그 시점에는 조선혁명군이 내분으로 해산되자 모송에서 불량배 대장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1940년에는 소부대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상급이였던 동북항일련군 지휘부의 승인도 없이  10월 23일 국경을 넘어 쏘련으로 피신했습니다.

세번째,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하던 시점에 김일성이 조선 북부지역에 진입해 일제와 싸웠다고 선전하는데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1945년 8월 6일과 8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쏘련은 8일에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조선으로 진격합니다.
쏘련 극동의 우스리스크에 있는 88려단에서 대대장을 하고 있던 김일성은 9월 18일에야 원산항으로 귀국했고 9월 23일에야 평양에 나타났습니다. 김일성은 쓰딸린과 모택동에게 졸라서 무기와 군대를 지원받아 6.25전쟁을 일으켜 3백만명의 인민들 사망하게 한 원흉이기도 합니다.

김일성 주석이 전후복구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었다고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바로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의 지원이었습니다. 1953년 6월부터 1959년말까지 쏘련과 중국, 체코와 웽그리아, 뽈스까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조선에 준 원조는 당시 가격으로 13억딸라에 달했습니다.
쏘련은 평양과 청진을 함흥은 독일이 담당해서 복구건설을 해주었고 조선 대도시의 대부분 중요 건물은 구라파식입니다. 그리고  대안중기계, 구성공작기계, 희천공작기계, 라남탄광기계 등 대부분의 중요산업시설도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으로 건설됐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조선은 단기간에 공업화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는데 이러한 진실은 하나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김일성 주석이 잘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선전했는데 사실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면적인 전후복구건설 원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북조선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초부터였는데 이때는 사회주의전후복구건설의 효과가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에 들어와 김일성은 사회주의국가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또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이 비판적이였던 세습독재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일정의 가장 결정적인 과오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후계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북조선의 미래를 그에 맡겼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쏘련에서는 후르시쵸브가 쓰딸린의 독재를 비판했는데 이와 반대로 조선에서는 왕조국가처럼 세습을 한 것입니다.

김정일은 후계자가 되자마자 예술분야만 내세우고 경제와 과학기술, 인민생활은 모두 무시했습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 조선의 경제는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붕괴되였는데 이런 시점에 김일성이 사망했습니다.
김일성은 조선의 력사와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의 모든 것을 자신의 절대권력을 만드는데 사용했고 또 아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넘겨받은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게 만들었습니다. 300만명이 넘는 죄없고 힘없는 인민이 굶어죽는 비극이 일어난것입니다. 조선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사람들이 굶어죽은 사태는 현대 세계력사상 처음보는 대 재앙이였습니다. 이같은 재앙은 김정일이 만들었지만 그 근원적 책임은 바로 김일성주석에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민들이 김일성 주석이 정치를 잘했다, 김일성 주석 시대에는 잘 살았다, 김일성 주석은 위대하다는 생각은 착각일뿐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조선을 세습독재 국가로, 쇄국정치를 하는 나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김일성 가문 3대세습까지 온 것입니다.

조선인민이 인간답게, 사람답게 자유롭고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면 김일성 가문의 세습통치를 끝나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김일성 사망을 맞으며 우리 인민이 깨달아야 할 조선력사와 정치의 진실입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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