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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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방송 : (1) 6.25 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

방송일
2020-06-24
진행
시간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는 우리 조선민족 분단력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한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북조선에서는 이 전쟁이 남조선에서 진격하여 자신들을 침략한 전쟁으로 저의하고 있으며, 모든 인민들 또한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력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조선개혁방송은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2회에 걸쳐 특집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6.25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 라는 주제로 방송합니다.

먼저 1950년 6월 25일 남조선의 상황을 알아봅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조선반도, 특히 38도선 일대에는 동해바다를 통과하고 있던 태풍 엘시의 영향권에 있었습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38도선을 경계하고 있던 남조선군 부대의 병사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소수의 경계병만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거기에 남조선군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6월 24일 비상경계령을 해제하여 많은 병사들이 휴가를 얻어 부대에는 100%의 병력이 상주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남조선 서울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용산에서는 장교들을 위한 사교클럽, 구락부를 지어 총참모장과 사단장급 고위직위자들은 모두 서울에서 파티를 즐긴 상황이었으며, 6월 25일 새벽에는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위장교들과 병사들까지 모두가 6월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시간 시선을 북조선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채병덕 남조선군 총참모장이 장교구락부 준공식을 생각하고 있을 때인 1950년 6월 20일 경부터 이미 북조선군은 훈련을 명목으로 38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조선군에게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2개 사단과 소련이 지원한 최신형 T-34땅크 200여대도 38도선으로 이동했습니다.
북조선의 10개 보병사단과 200여대의 땅크, 2천5문의 화포, 11척의 함정, 226대의 항공기 등이 지상과 바다, 공중에서 남조선을 공격할 만반의 채비를 갖춘 것이었습니다.
6월 25일이 다가왔습니다 때는 새벽 4시경 38도선 북쪽에 배치된 북조선 부대들에게 ‘폭풍’이라는 암호가 하달되었습니다. 그리고 2천 5여문의 화포의 포구가 38도선 남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민족, 동족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 ‘6·25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었습니다.
북조선군의 목표는 최단시간내에 남조선 수도인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남조선 제7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동두천-포천 방향에 북조선 제3사단과 제4사단, 그리고 땅크 80여대를 투입했습니다. 이어 남조선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문산-행주 방향에 북조선 제1사단과 땅크 30여대를 투입해 서울을 직접 공격하게 했습니다.
이어 북조선 6사단과 13대의 땅크는 개성에서 한강을 건너 김포반도 방향으로 진격하여 서울의 서쪽 후방을 차단하게 하고, 남조선 제6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춘천-홍천 방향에 북조선 제2사단과 제12사단, 그리고 모터사이클연대를 투입해 서울의 동쪽 후방을 차단하게 했습니다. 동해안에서는 북조선 제5사단, 제766유격연대, 제945육전대가 공격하게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남조선 군대는 북조선 군대의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잖아도 많은 병력이 휴가와 외출 외박을 나간데다가 최신형 무기인 T-34땅크를 막아낼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조선군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북조선군의 공격이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난 아침 6시에야 북조선군의 남침사실을 보고 받았습니다. 그가 술에 취에 깊은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성모 국방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장관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장관은 일요일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채병덕 소장은 장관 비서와 함께 장관 숙소로 찾아 북조선군의 남침 사실을 보고 했습니다.
남조선 대통령 이승만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25일 아침 10시경 창경궁 비원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청와대 경비대장 김장흥 총경이 달려와 북조선군의 남침사실을 보거했습니다. 대통령은 낚시를 던져둔 채 급히 청와대 집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급격히 전세가 악화된 이후 서울 근교에 있는 모든 부대는 서울 북쪽으로 이동해 서울을 방어하였으며, 결국 전쟁 하루만인 6월 26일 오후 1시에는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가 북조선군에게 점령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조선 군대는 저 멀리 남쪽 부산까지 밀려났다가 미국 및 유엔군의 참전으로 회복을 하여 3년간의 전쟁 끝에 지금의 북과남의 영토를 유지하게 된 것입니다.
북조선 청취자 여러분, 이 민족 비극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된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구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후르시초프의 회고록을 참고할것입니다.
1953년부터 1964년까지  쏘련공산당의 총 비서였던 니키타 후르시초프가 지난  후르시초프는 1964년 서기장에서 물러난 후 회고록을 출판하였으며, 1991년 쏘련의 주간잡지 ‘오고뇨크’에서 후르시초프의 회고록을 련재했습니다. 이 회고록에서는 6.25전쟁에 대한 부분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얘기의 핵심은 바로 김일성이 쓰딸린과 모택동의 승인과 지원을 받아 남침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일성이 대표단을 이끌로 모스크바에 와서 스딸린과 회담하면서 남조선을 무력으로 시험해보고 싶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김일성의 주장에 대해 쓰딸린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였으나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에 “모택동에게 의견을 묻기로 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회고록은 “모택동도 김일성의 제안에 찬성한다고 대답하였으며 미국은 아마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6.25전쟁 과정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였습니다. 후르시초프는 “때가 닥쳐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성공적으로 시작되였고, 북한사람들은 급속하게 밀고 내려갔다”고 북조선의 남침을 명백하게 기록했습니다.

흐르쇼브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승만과 그 도당의 제거는 북조선 군대의 진격에 따라 이루어졌다. 반격은 미약하였다. 결국 김일성이 옳았다. …… 서울을 점령하고 군대는 급속도로, 또한 매우 성공적으로 진격해 갔다. 우리 모두는 기뻐했고 김일성의 성공을 기원하였다.”
이렇게 그의 회고록을 보면, 그 어디에서도 남조선이 먼저 조직을 하여 북으로 진격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구 소련 공산당 총 비서였던 니키타 쎄르게예브 후르시초프는 6.25 전쟁이 김일성에 의한 남침이며, 쓰딸린과 모택동의 허락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회고록에서 밝혔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6.25 전쟁이 보여준 평화의 조건이라는 내용을 다루어보겠습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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