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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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 특집방송 : 3회 김일성 사망의 진실

방송일
2020-04-16
진행
시간

북조선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김일성 생일 4월 15일을 맞으며 마련한 특집 세 번째 시간으로 북조선 력사상 최대의 의문으로 남은 김일성 주석 사망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죽음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입니다. 1994년 7월 9일, 조선중앙방송은 중대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7월 7일에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장 쇼크가 합병되어 사망하였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남조선의 김영삼 대통령과 최고위급 회담을 하기로 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의욕 넘쳤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한 것입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북조선의 최고위급 간부들을 비롯해 평양에서는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았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을 죽였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는 후에 남조선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남조선의 대중정치 시사잡지 ‘신동아’ 2005년 1월호는 김일성 주석 사망의 진실을 구체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명의 북조선 고위급 간부들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 대한 소식을 남조선에 은밀히 전해주었습니다. 여러 통로로 남조선에 전해진 소식들, 거기에 남조선과 미국이 밝혀낸 정보들을 종합하여 정리해보면, 김일성 주석의 사망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1994년 북남정상회담을 앞뒀던 김일성 주석은 매우 건강했습니다. 사망 하루 전인 7월 7일 오전, 묘향산 특각에서 김일성 주석은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 부문 일군회의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별 탈 없이 건강했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야만 했던 리유는 남조선 대통령 김영삼과의 최고위급 회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김정일은 오래전부터 김일성 주석에게 듣기 좋은 보고만 하고 경제난이나 식량난 등, 북조선의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들은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김일성 주석은 나라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최고위급 회담 준비를 위해 묘향산에 도착하여 손수 연설문도 쓰는 등, 기대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김일성 주석이 최고위급 회담에 참석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핵을 포기하고, 라진-선봉을 개방하고, 북남 협력도 본격화하게 되면, 북조선 내부의 민낯이 드러날 것은 너무나 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조선의 실상이 남조선과 세계에 공개되면, 1980년대부터 북조선의 정치를 독점해온 김정일의 행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김정일은 대동강 초대소에 자신의 심복인 김용순, 연형묵, 리용철 등 최고위급 간부들을 불렀습니다. 김정일은 그들에게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통일에 대한 반발심을 보였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이 묘향산으로 떠나기 전부터,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심장 담당 주치의를 휴가 보내어 묘향산에 가지 못하게 했고, 움직이는 병원이라고도 불렸던 북조선의 독일제 최첨단 의료설비도 묘향산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7월 6일, 묘향산에서 북남최고위급 회담을 위해 당과 내각의 경제 일군들을 불러 회의를 하던 중, 김일성 주석은 식량난 실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격분했고, 그날 저녁 김정일에게 전화하여 잔뜩 혼을 냈습니다. 이 전화를 계기로 김정일은 김일성 주석이 살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고,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깁니다. 김정일은 자신이 가장 믿는 특수부대를 시켜 헬리꼽터을 이용해 묘향산으로 침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김일성 주석은 7월 7일 오전, 경제 일군들의 회의를 다시 열어 북남최고위급 회담을 위한 토의를 시작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식량난은 나아질 테니 지연되었던 철도공사를 반드시 끝내라고 지시했고, 회의를 끝낸 뒤 오침에 들었습니다.

묘향산의 오전 협의회 소식을 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곧바로 협의회 참가자 전원을 평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김정일은 식량난 실태를 보고한 철도상에게 군량미는 통일 전쟁을 하기 전까지 단 한 알도 꺼낼 수 없다는 강경한 뜻을 밝혔습니다.

7월 7일 오후, 다시 회의하려던 김일성 주석은 30여 명이나 되던 간부들이 대여섯 명으로 줄어든 것을 보고 의아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불러서 간부들은 모두 평양으로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격분했습니다.

그날 밤,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넘게 싸웠습니다. 1997년 6월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발행한 장편소설 ‘영생’에서도 7월 7일 오후 10시에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이 전화한 것으로 적혀있습니다.

이 전화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서울로 간다, 못 간다를 두고 최악의, 그리고 최후의 말싸움을 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과의 마지막 전화에서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김일성이다.”라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결국,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8일, 령시를 전후한 시간에 묘향산에서 그의 아들 김정일이 보낸 특수부대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를 암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는 데 동원된 특수부대는 헬리꼽터를 타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이 보낸 또 다른 헬리꼽터에 의해 격추되었습니다. 남조선 주한미군의 전파탐지기는 1994년 7월 7일 밤부터 다음날인 8일 새벽 사이에,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향하는 헬리꼽터 3대를 탐지했습니다.

소설 ‘영생’에서는 7월 8일 새벽에 김정일이 보낸 첫 번째 헬리꼽터가 폭우 속에 추락하고, 두 번째는 김일성 주석을 평양으로 호송해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도에서 언급되지 않은 세 번째가 바로 묘향산에서 김일성 주석을 암살하고 철수 중인 헬리꼽터를 격추한 제3의 헬리꼽터인 것입니다.

50여 년간 북조선을 통치하던 김일성 주석은 자기 아들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겼고, 최후에는 암살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진실을 알고 있는 몇몇 최고위급 간부들로부터 김정일이 김일성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은밀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7월 9일 김일성 주석이 심장 쇼크로 사망했다는 의학적 결론을 조작하여 발표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경호를 담당하던 2호 호위총국에 비밀지시를 내려, 김일성 주석을 경호하던 1호 호위총국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의 애도 기간을 100일에서 1년으로, 다시 3년으로 늘린 것은 김일성 주석에게 충성한 사람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일성 사망 애도 기간에 3명 이상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금지한 이유는, 자신을 반대하는 김일성 세력의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지도자 자리를 빼앗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그의 아들 김정은 위원장 역시 자신의 고모부와 형을 처형하는 공포정치를 이어갑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많이 고통받는 사람들은 바로 북조선 인민들입니다. 권력에만 눈이 먼 김씨 가문은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제 북조선에서는 김일성 가문이 아닌,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상으로 김일성 주석 생일 기념 특집방송을 마칩니다. 청취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입력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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