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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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생일 특집방송 : (1) 김일성 주석이 북조선 지도자가 되기까지

방송일
2020-04-14
진행
시간

북조선 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동생까지 내세우며 위험한 정치를 하고 있는 지금 조선의 건국 지도자 김일성 생일 4월 15일이 됐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4월 15일이 민족최대의 명절이 맞는가 생각이 들지만 김일성 주석을 다시금 돌이켜 보는 것은 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필요합니다. 김일성 주석 생일 특집 첫 번째 시간으로 김일성 주석이 어떻게 조선의 지도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 더 멀게는 1970년대와 80년대까지 김일성 주석은 북조선 인민의 정신과 현실에서 모든 것을 지배했습니다. 특히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던 1994년 인민들은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의 우상화가 오늘날 김정은 독재통체 세습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됐고, 나라가 잘살게 됐고, 김일성 주석 때문에 조선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인민들은 충격에 휩싸여 하염없이 울고 통곡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지 26년째인 오늘날, 북조선에서는 김일성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력사 교과서의 학습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4·15도 이제는 그렇고 그런 명절 중의 하나, 부식물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명절이 됐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김일성 주석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수령이 아니고, 국가의 지도자는 김일성 가문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북조선의 수령론은 완전한 허구, 즉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북조선 지도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아도, 김일성 수령론의 허구성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일제를 타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을 항복시켰고 북조선 정부 수립도 김일성의 주도가 아닌, 쏘련 군정이 한 것입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는데도 항복하지 않자, 9일에는 나가사키에 투하했습니다. 뒤이어 쏘련도 8월 9일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15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만주와 조선으로 진격하게 되자, 일본 군부는 다음날인 10일 항복을 결정합니다.

쏘련은 1945년 8월 17일, 웅기, 나진, 청진항을 점령하였고 24일에는 평양에 진주하는 동안 이때까지도 김일성은 쏘련 우스리스크에 있었습니다. 평양시를 점령한 쏘련 극동방면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쨔꼬브 대장은 8월 25일에 ‘북조선 주둔 최고사령부’를 설치하고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쏘련군이 평양에 진주하기 일주일 전인 8월 17일, 평양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수립되고 있었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조선에서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조만식이었고, 20여 명의 민족주의 독립운동가가 함께했었습니다.

쏘련군은 평양에 입성한 뒤, 군정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쏘련 군정은 건국준비위원회를 민족주의 지도자 16명, 공산주의 지도자 16명이 참가하는 ‘평양인민정치위원회’로 개편했습니다. 동시에 민족주의 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방학세를 비롯한 조선 출신의 쏘련 군관과 간부들을 끌어모았습니다.

당시 쏘련 극동군 88려단 대대장이었던 김일성은 9월 19일에야 쏘련 군함 푸카조프호를 타고 원산항으로 귀국했습니다. 김일성은 조선에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지도자였던 조만식을 만나자 “선생님, 김일성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군정 초기의 조만식은 쏘련 군정에 협조적이었고 쏘련 군정도 조만식을 신뢰했는데, 쏘련이 조선의 자원과 설비를 략탈하면서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자주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립장이었던 조만식은 공산주의인 쏘련 군정과 정치적인 대립이 심해졌습니다.

쏘련 군정은 어떻게든 조만식을 포섭하려 했지만, 조만식은 “쏘련군은 해방군인가, 점령군인가”라 말하며 조선의 정부 수립에 개입하지 말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후 쏘련 군정 내부에서는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조만식을 제거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김일성이 8·15 직후에 조선으로 귀국하지 못한 이유는 9월 초순,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가서 쓰딸린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쓰딸린은 김일성을 군정 통치하의 북조선 최고 지도자 후보로 념두에 둔 다음, 김일성을 평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1945년 9월 20일, 쓰딸린이 와실리옙스끼 극동전선 총사령관에게 북조선 점령에 관한 7개 항목의 명령서를 보냈습니다.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이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선 연설을 하기 전까지, 북조선 정부 수립 준비는 철저하게 쏘련 군정이 주도했습니다.

김일성이 평양공설운동장에서 환영 연설을 하기 이틀 전인 1945년 10월 12일, 쏘련 군정 최고 사령관 치스챠꼬브는 포고문 하나를 공표하였습니다. “붉은 군대는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왔는가”라는 제목의 포고문에는 8·15 이후에 수립된 각 정당 단체들은 쏘련 군정 경무국에게 정관과 명단을 등록하라는 명령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10월 14일, 김일성이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선 연설을 했는데, 사람들 대부분은 33세의 젊은 김성주가 김일성 장군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원산인민위원회는 쏘련군 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김일성 장군이란 사람은 없다”라고 하자, 쏘련군 사령부는 “김성주가 바로 김일성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였고, 그때까지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이름을 써왔습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 수립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만식이 반대하자, 김일성은 10월 20일 조만식을 찾아가 정당 창건을 도와달라고 회유했습니다. 쏘련 군정은 조만식에게 새로 수립될 북조선 정부의 높은 자리까지 제안했지만, 조만식은 거절하고 조선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독자로선으로 나가게 됩니다.

1946년 1월, 쏘련 군정은 김일성과 인민위원회를 시켜 조만식을 반동으로 체포했고, 민족주의 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합니다. 북조선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는 민족주의 지도자였던 조만식을 제거하면서, 쏘련 군정이 내세운 김일성이 북조선 지도자로 점차 자리 잡게 됩니다.

1945년 9월 초에 모스크바의 한 별장에서 김일성을 만났던 쓰딸린은 치스쨔꼬브 쏘련 군정 사령관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 쏘련 군정은 이 사람에게 적극 협력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사실상 이전부터 김일성을 북조선 지도자로 앉히기 위한 계획이 철저하게 진행됐던 것입니다.

1946년 여름, 쓰딸린은 김일성과 박헌영 두 사람을 극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불렀습니다. 두 사람을 만나본 쓰딸린은 김일성을 북조선의 지도자로 최종결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김일성이 북조선의 지도자가 된 력사적 진실입니다.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자주적이었던 박헌영 대신, 쏘련 군대와 군관을 향해 무한한 충성심을 보인 김일성이 쓰딸린의 마음에 들어 북조선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지금 북조선 인민이 배우고 있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비롯한 혁명력사는 일부만 맞고 대부분이 조작과 거짓으로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김일성 가문의 북조선 세습 독재가 74년이나 이어져 오면서 국가는 파산상태이고 코로나 비루스 전염병 사태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능력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북조선에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새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상으로 김일성 생일특집 첫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는 김일성 주석의 정치방식과 교훈에 대해 알아봅니다.

입력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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